▲ 송도의 첫눈, 2010.

매년 이맘때 기다리는 선물이 있다. 첫눈이다. 올해 인천에는 눈다운 눈이 아직 내리지 않았다. 기상학적으로는 이미 내렸다고 통보되었지만 내 마음 속의 첫눈을 아직 맞이하지 않았다. '첫눈 내리는 날 만나자'는 약속을 하던 순수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첫눈이 올 때면 언제나처럼 아련해진 추억의 단편을 끄집어내어 감성에 젖어들곤 한다.

첫눈에 반해버린, 하지만 언어가 달라서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청춘남녀가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온 교환학생 김민(이준기 분)은 우연히 사찰에서 소녀 나나에(미야자키 아오이 분)를 만나고, 둘의 사랑은 깊어간다. 터프한 민과 모든 걸 따뜻하게 감싸는 능력을 가진 나나에는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며 말보다는 진심이 먼저 와닿는 사랑을 만들어갔다. 천년 고도 교토에서 펼치는 진실한 사랑의 모든 것,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그린 영화 '첫눈'(初雪の戀: Virgin Snow, 2007)의 줄거리다.

한국과 일본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정서적 닮음은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켜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의 영역을 넘어 경제적 교류를 통해 상호간 지속가능한 우호관계를 만들어왔다. 그 역할의 중심에는 정치가 있다.

지금의 일본은 아베 집권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그동안 한국과 일본이 쌓아온 긍정적 우호 관계를 역행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베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과 군국주의 부활을 위해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마치 녹아버린 눈사람처럼 쉽게 망각해 버렸다. 영화 '첫눈'의 여주인공인 이야자키 아오이는 영화촬영 후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상대를 더 이해해야 하기에 더 궁금해 하고, 더 바라보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아베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