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한 국립생물자원관전시교육과장

 

/자료제공=국립생물자원관

요즘 인천의 하늘은 V자로 편대를 이뤄 오가는 기러기 무리와 그들이 소통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기러기는 조선시대에는 그력, 그려기로 불리다가 긔려기, 기려기를 거쳐 기러기로 변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16종이 기록되어 있고 우리나라에는 쇠기러기, 회색기러기, 흰기러기, 큰기러기, 흑기러기 등 10종이 기록되어 있지만 주로 보이는 기러기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 두 종류이다.

영어로 goose는 야생의 기러기를 말하는데 사육하는 가금을 이야기할 때는 거위로 번역한다. 오래 전 한 지자체에서 하와이와 자매결연을 추진하면서 하와이측에서 기증 제안한 Hawaian goose를 거위의 한 품종으로 착각하여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새는 거위가 아니고 하와이기러기 또는 네네기러기라는 지구상에서는 하와이에만 있는 멸종위기종이다. 하와이측의 통 큰 제안이었는데 성사되지 못해서 아쉬웠다.

가락지나 전파발신기를 이용해서 기러기가 계절별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경로를 추적한 결과 러시아의 최동북단의 콜리마지방이나 아나딜 지방 등의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마친 기러기들이 가을이 깊어지면 우리나라로 이동해오는데 많은 수의 기러기가 철원평야에 먼저 도착하여 추수를 마치고 남은 벼 낱알이나 식물의 뿌리 등을 먹으며 오랜 여정에 지친 몸을 추스린다. 철원에 남아서 계속 겨울을 보내는 기러기도 있지만 일부는 문산과 김포, 인천등지로 이동하고 천수만, 금강, 영산강, 낙동강과 주남저수지 등 여러 곳으로 분산하여 서식한다.

한무제 때의 고사로부터 유래한 안서(기러기 雁 쓸 書)가 먼 곳으로부터 소식을 전해온 편지라는 의미를 모르더라도 추운 날 기러기의 모습과 그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멀리 떨어진 지인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것은 왜일까? 남북을 오가는 철새이다 보니 북녘이 고향이신 분들은 기러기를 보며 고향 소식을 기다리곤 했다.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가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간다고 하여 부부간 신뢰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의미로 전통혼례에서 전안례라고 하여 살아있는 기러기를 사용하였는데 구하기 어렵다보니 한 쌍을 목각으로 만들어 혼례예물로 사용하고 있다. 자식의 유학 바라지로 배우자가 함께 가서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라는 호칭에는 잘 버티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구결과 조상들의 생각대로 기러기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한다. 극지방과 가까운 번식지의 혹독한 기후와 월동지역의 혹한, 부족한 먹이와 밀렵 등의 열악한 환경을 잘 버티고 자손을 번성시키려면 암수가 함께 했던 경험이 중요하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한 생리적으로 조사해 보면 짝과 함께 이동하는 기러기는 그렇지 못한 기러기에 비해 심박동수가 안정적이라 한다. 기러기들은 배우자와 함께 있으면 스트레스가 준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런지 자문해 본다. 자연은 이래저래 배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