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올해 노벨위원회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한 명으로 프린스턴 대학의 제임스 피블스 명예교수를 선정하였다. '빅뱅' 이후 우주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아내려고, 평생을 노력한 그의 성과가 마침내 인정받았다.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천체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어떻게 '빅뱅'이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었을까? 그 중 아주 중요한 증거가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이다.

공간도 시간도 없던 상태에서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된 이후 38만년이 지났을 때, 원자 안에 갇혀 있던 빛이 밖으로 일시에 방출되었다. 우주 최초의 빛인 셈이다. 가정이나 사무실의 전구에서 나온 빛은 주변의 물체에 도달하면, 그 물체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그런데 이 중 하늘로 방출된 빛은 어떻게 될까? 하늘을 향해 진행하면서 일부 빛은 공기나 먼지 등에 흡수되겠지만, 대기층을 통과한 빛은 우주로 향하게 되고, 우주에서 어떤 물체에 부딪치기 전까지는 빈 공간을 한없이 진행하게 된다.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가 4.2광년 정도이니, 우주의 거의 대부분은 텅 빈 진공이고, 물체가 차지하는 공간은 극히 일부분이다. 따라서 지구를 벗어난 빛은 대부분 끊임없이 우주를 떠돌게 된다. '빅뱅' 이후 38만년이 지나서 원자 안에 갇혀 있다가 동시에 방출된 태초의 빛을 우주배경복사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우주배경복사는 138억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주의 전 공간을 여기저기 떠돌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지구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1940년대에 최초로 두 학자 앨퍼와 허먼이 이론적으로 우주배경복사를 예견하였으나,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천체 관측을 생각하면, 보통 우리 눈으로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는 것을 떠올린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은 가시광선이라 불리는 특정 파장대역에 속한다. 천체에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휴대폰에 사용되는 전파와 같은 다양한 파장의 전자기파도 방출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쟁에 사용되었던 레이더가 천체 관측을 위한 장비로 활용되면서, 가시광선보다 긴 파장의 전자기파를 이용한 전파천문학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1963년 벨 연구소의 펜지어스와 윌슨은 하늘에서 오는 다양한 전파원을 분석하기 위한 관측에 착수했다. 정확한 관측을 위해, 자신들의 전파망원경에 잡히는 잡음부터 확인하고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1년 동안 장비를 닦고 다시 배선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전파망원경의 방향과 관계없이 늘 검출되는 한 종류의 잡음을 제거할 수도 없었고, 그 원인도 알 수 없었다.

한편 이즈음 프린스턴 대학의 디케와 피블스 두 물리학자는 우주배경복사의 존재를 계산해 냈고, 이것이 빅뱅의 결정적 증거임을 깨달았다. 앨퍼와 허먼이 이전에 했던 일을 모른 채, 그들의 결과를 재현한 것이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교수를 통해 디케와 피블스의 계산 결과를 듣게 되었고, 그들이 제거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잡음의 정체가 바로 우주배경복사임을 알게 되었다. 펜지어스는 프린스턴의 디케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관측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 당시 본인들이 계산해 낸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기 위한 전파망원경을 설계 중이었던 디케와 피블스는 펜지어스와 윌슨의 결과를 전해 듣고, 다 잡은 노벨상을 놓쳤다고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1978년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올해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피블스가 그 당시 노벨상을 놓쳤다고 아쉬워했던 바로 그 피블스이다. 그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실망감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이루어낸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