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가 된 낙원, 작약도.


2주전 동구 구의원들과 함께 작약도(물치도)에 '상륙'했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배가 없기 때문에 조그만 배를 전세내서 다녀왔다. 섬은 폐허, 그 자체였다. 배를 대던 선착장은 군데군데 유실되었고 철제 가로등들은 녹슬어 대부분 허리가 꺾인 상태다. 해안가의 횟집과 방갈로는 흉가처럼 변했다. 섬 전체가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몇 사람과 함께 갔기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시설 안을 둘러볼 때마다 목덜미가 서늘했을 것이다.

작약도는 배편이 시원치 않아 멀리 갈 수 없었던 1960∼70년대 만해도 수도권에서 알아주던 해상유원지였다. 1954년 창간한 '주간인천' 1959년 6월1일 자에 '작약도유원지 개방' 광고가 실렸다. '서울 근교의 유일한 해상낙원' '숲이 우거지고 새소리, 파도소리 교향(交響)하는 서해의 낙원'이란 카피로 섬을 홍보했다. 경인선 기차는 물론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버스를 운행했으며 배는 만석동에서 수시로 다녔고 왕복 250환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서울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음식점 '인화루'가 작약도에 분점을 설치한 것도 안내했다.

작약도는 1963년 1월1일 부천군 영종면 운남리에서 인천시 만석동으로 행정 구역이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석부두에서 멀리 뛰기라도 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1960년대 만석동 아이들은 검은 타이어 튜브를 끼고 거센 물살을 헤치고 섬까지 다녀오곤 했다. 해방 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주민들은 섬에 몰래 들어가 땔감용 나무를 베어오기도 했다. 그만큼 작약도는 만석동과 친숙한 섬이다. 최근 인천시는 작약도를 매입해 '힐링 섬'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예전처럼 작약도를 가기 위해 만석부두에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꿈꿔본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