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영 전 경기도의원

주말마다 광화문과 서초동 그리고 여의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집회를 연다. 주최하는 측에서는 수십만이니 수백만이니 하며 규모를 과시한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더욱 확대될 것이다. 과연 국민들이 거리와 광장에 모여 정치적 요구를 하는 소위 '거리 정치, 광장 정치'는 괜찮은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있으나 사회적 갈등의 해결 구조로서 정치가 역할과 기능이 상실된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광장정치가 가져오는 폐해다. 갈등을 해결하는 기능이 아니라 증오와 분노를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광장과 거리의 주장과 요구는 매우 과격하고, 증오와 분노로 표출된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선전과 선동이 난무하게 된다. 매개집단이 없는 대규모 운동을 통한 한국의 정치변화를 그레고리 핸더슨(Gregory Henderson)은 '소용돌이의 정치'라고 했다.

통합 기능을 해야 할 정치는 갈등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조장한다. 대통령이 정부의 수반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은 지지세력뿐만 아니라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꼭대기의 원형돔은 국민들의 다양한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의미라고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이다. 여론형성 기능을 하는 신문, 방송 등 언론과 지식인도 마찬가지이다. 진실을 밝혀 내고 갈등을 해결해 통합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데 바쁘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어느 편인가가 더 중요하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을 듣는 존재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광장정치, 거리정치의 결과는 국론분열과 국가공동체의 와해일 것이다. 이제는 분노를 동원해 광장으로 거리로 나가는 정치를 끝내야 한다.
통합을 위해서는 진실을 추구하고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선전과 선동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고 분노와 증오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치가 그 기능을 상실해 국민들을 광장과 거리로 내몰고 있다. 통합을 추구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통합을 추구하는 세력이 대통령과 국회, 언론, 지식인 등 폭넓게 그리고 두텁게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고, 선진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경기도는 정체성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경기도는 정체성이 없다. 그래서 단결하지 못하고 모래알 같다'라고 말하는 몇 사람의 경기도지사를 보았다. 경기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통합 정신과 실학의 전통을 앞으로 경기도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한다. 경기도는 가장 많은 인구 구조를 가진 자치단체이다. 서울을 품안에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받아들여 함께 사는 곳이다. 지역갈등이 있는 현실에서 경기도가 모든 지역을 용광로처럼 녹여 하나가 되게 하는 역할을 펼쳐야 한다.

또 경기도는 실학의 본고장이다. 남양주에 실학박물관이 있고, 안산시에는 성호기념관이 있다. 실학의 성격에 대해서 논란이 있긴 하지만 민중의 실생활을 도외시한 채 형이상학적 이론 추구에 몰두하던 성리학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민족 주체성의 자각, 인권의 중시, 이용후생의 강조, 실사구시, 이념적 개방성 등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실학사상이야말로 극단적인 이념과 정치적 대립으로 치닫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해 경기도의 정체성으로 키워나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