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택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 새얼문화재단이사장

민주주의는 고정된 법이나 체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 있는 생명체일 때,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물도 주고, 햇볕이 필요할 때는 그늘을 치워주고, 맑은 공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비료와 약도 처방해야 한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올곧게 뻗어나가고, 크게 성장하려면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항상 깨어 정부와 의회를 주시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그 토양이 지녀온 역사와 시민의 꿈과 동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설계를 자양분으로 성장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존경받는 지도자와 존경받는 세력 역시 필요조건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국민의 깨어 있는 정신으로만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일본과 불편한 사이가 되었고, 미·중 간의 무역·경제·군사 패권경쟁으로 세계정세도, 경제도 순탄치 않다. 북·미 협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속도가 나지 않아 한반도 평화 정착의 미래가 불투명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도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이 시작됐다. 미국은 우리에게 금년에 부담시킨 방위비분담금 1조389억원도 모자라 대폭 상승한 5조원이 넘는 분담금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적 상황이 금년과 명년 사이에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기에 갑자기 이토록 무리한 청구서를 들이댈 수 있는가. 특히 중국의 코앞에 위치한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대한민국의 혈세가 이미 10조원 이상 들어갔다. 전체 건설비용 중 95%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국 국민들과 조야(朝野)는 알고 있을까? 미 상원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안보 기여는 상당하니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는 소리가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에서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또 심각한 문제가 있다. SOFA(한미행정협정)에는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대해서만 경비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데 미국에서는 작전 지원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미국의 요구는 "미국의 유사시 '한국군의 참전'을 명기해 미국이 개입하는 분쟁에 한국군의 참전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과 충돌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선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군은 이란과도 싸워야 하고, 중국과도 맞서야 할 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은 기도한다. 당리당략을 내세워 싸움으로 밤을 지새우는 정당이라도 큰 나라의 부당한 요구에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이 국민을 위한 그리고 국민의 정서와 아픔을 공유하는 지도자와 나라의 본래 모습이다.

끝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한미동맹의 유지와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균형 있게 고려하며 꼼꼼히 살피고 따져야 한다. 미국 정부가 자국 국민의 세금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도 국민의 세금을 혈세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자세로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동맹국으로부터 존중받는다.
험난한 산과 강을 건너야 넓은 평야가 보이는 법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아파 밤이 깊어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가 이토록 험난한 시대 앞에서 깨어 있는지, 우리가 과연 같은 배를 타고 이 파도를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지, 그것이 더 큰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라의 품위와 긍지를 국민의 가슴에 심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여야가 합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정치권이 가타부타 없이 이리도 긴 침묵이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권자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밤새워 토론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