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던 섬 송도] 송도국제도시 밑그림을 그리다
[없었던 섬 송도] 송도국제도시 밑그림을 그리다
  • 장지혜
  • 승인 2019.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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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의 해상도시 개념, 1984년 도시기본계획에 담겨"  
▲ 송도국제도시 도시계획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현재는 인천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윤석윤 전 인천시 행정부시장. /사진제공=인천도시역사관

 

▲ 1981년 기본계획이 수립되며 송도신도시가 문서상에 첫 등장했다. 사진은 1981년 기본계획을 토대로 만든 1984년 인천 도시기본계획(인천광역시, 인천의 도시계획, 2004, p.101) 지도. /사진제공=인천도시역사관

 

▲ 송도신도시 매립 이후 토지 사용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자료로 지식기반산업, 연구시설용지, 테크노파크 등 용도별 구역이 표시되어 있다.(인천광역시,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계획, 2003, p.110) /사진제공=인천도시역사관

 

김용하 인천도시연구소 소장

"1981년 도시기본계획 도입하며 신시가지 구상 처음으로 가시화"


윤석윤 전 인천시 행정부시장

"OMA 지게형 도시 계획 파격적…정보통신단지 조성 IMF로 발목"

송도유원지 인근 사람들은 옥련(玉蓮)이자 송도(松島)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았다.


옥련동 개발이 본격화 되기도 전인 1980년대 들어서 옥련동 사람들이 조개를 캐던 그 바다가 메워진다는 얘기가 돌았다.

1986년 당시 인천직할시가 인천국제공항의 배후지구로 처음 신도시 개발을 구상했고 1988년에 인천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에게 계획을 보고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1년 최종계획안이 확정됐다.

이때 만해도 없었던 땅인 갯벌을 매립해 만든 신도시의 이름이 '송도'가 될 줄은 몰랐다. 논란이 불거지긴 했으나 결국 이곳은 또 다른 송도, 송도국제도시가 된다.

인천도시역사관은 이 때 송도국제도시 도시계획에 직접 참여했거나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 당시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도시계획 전문가가 본 송도 개발
김용하 인천도시연구소 소장은 일본교토대학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한 공학박사다. 인천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지냈고 '인천 공유수면매립지 토지이용현황공사 연구', '인천의 도시계획', '지도로 보는 인천의 변화' 등의 보고서를 낸 도시계획 전문가다.

김 박사에 따르면 1980년도에 수립된 도시장기기본계획에 송도국제도시에 대한 구상도가 최초 포함됐다.

"1981년 도시기본계획이 처음 도입되면서 도시기본계획의 수립을 지자체가 하도록 의무화 됐죠. 당시 계획을 보면 송도국제도시의 범위는 지금의 동막 지역과 남항 지구, 동양화학 부지를 아우르고 있어요. 송도 앞바다 일부를 매립하여 새로운 주거지이자 테마파크를 포함한 신시가지로 개발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이후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1~4공구에 한해서만 주거지역으로 허가를 받았다.

앞서 1970년대 도입된 수도권정비계획에 인천은 과밀억제권역으로 분류돼 도시기반 시설을 짓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영종도에 신공항 건설 계획이 확정되면서 성장관리권역으로 변경됐다. 송도지역 역시 성장관리권역으로 바뀌었으나 주택공급 200만호 계획 등으로 인해 주거지 개발만 가능했다. 나중에는 송도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예견되면서 첨단 정보화 시설 개발도 가능해졌다.

"처음 송도국제도시가 조성될 당시 구역은 죄다 뻘밭이었어요. 갯벌을 매립하다보니 제일 가까운 문학산에서 흙을 가져다가 썼다고 들었어요. 인천지하철 1호선 공사 때 나온 흙도 사용했을 겁니다."

최기선 시장 재임 시기 영종의 에어포트, 청라의 씨포트, 송도의 텔레포트를 합쳐 트라이앵글 계획이 나왔다. 세 곳은 일부 주거지역을 제외하고 정보산업단지로 변경돼 IT와 BT 등 첨단산업이 주를 이루는 특징을 가졌던 테크노파크가 만들어졌다.

"'삼보'라는 기업이 들어오려다가 못했죠. 2003년도에 들어서 송도는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고요."

#윤석윤 전 인천시 행정부시장
윤석윤 인천대 산학협력단 교수는 1983년 6월에 인천시의 도시계획계장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 인천으로 왔다. 1982년 도시기본계획이라는 제도가 생기기 이전,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할 때부터 도시계획 업무를 맡았다.

"지금보다는 불투명한 사업 방식이 어느 정도 존재했기 때문에 불만 민원이 많았어요. 그래서 공무원들이 피하던 자리이기도 했죠."

윤 교수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도시계획국장을 지내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인천시 행정부시장을 지냈다. 그렇게 30년 이상 인천에서 도시계획을 담당하면서 옥련지구개발, 대우 송도자동차하치장, 율도 매립지 용도변경, 송도국제도시 도시계획 등을 맡았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데이지 종합'이라는 기업의 제안으로 인천 장기종합개발계획이 진행됐고 이즈음 최초로 송도 해상도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이후 수도권 정비계획 때문에 개발이 보류됐다가 1984년 수도권 정비 기본계획이 확정되면서 같은 해 8월 송도국제도시가 인천도시기본계획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1988년도 들어서 송도경제자유구역청의 전신인 공용개발사업단이 구성됐다. 62명으로 구성된 공용개발사업단은 송도국제도시 매립사업, 토지구획정리 사업, 택지개발 사업, 도시관광 사업, 영종도 부지, 석산 개발 사업을 담당했다. 그러나 인천이 과밀억제권역이라는 이유로 송도국제도시 매립은 중단됐고 한동안 보류됐다가 최기선 시장이 당선되면서 다시 진행됐다.

"1994년 송도 앞바다 매립이 시작되긴 했는데 석재가 부족한 문제에 직면했죠. 그때 문학경기장을 지으려는 장소에 돌산이 있어서, 돌산을 부수어 평지로 만들고 생겨난 석재를 매립에 사용했지만 그래도 모자랐어요."

한편 윤 교수가 건축 디자인 회사에서 송도국제도시 개발 구상이 담긴 3개의 도판을 받아왔는데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형태였다. 또 조성안 국제공모를 거친 결과 네덜란드의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의 제안이 채택됐다.

"OMA의 제안은 파격적이었죠. 자연발생적인 형태를 쫓은 A자형(지게형) 도시 계획이나 건축 계획을 시도했었어요."

제안에 따라 지하철 노선이나 육상 도로를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핵심에 해당하는 센트럴파크 지역을 상업 업무 중심지역으로 계획했다. 또 면형 배치가 아닌 선형 배치를 중시했다. 기능 지역을 선형으로 배치하는 '벨트(Belt)'라는 개념, 그러한 여러 벨트들이 겹쳐져서 여러 기능들이 결합되는 '노드(Nod)'라는 개념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축에 따라 도시와 산업이 형성된다는 '밴드(Band)'와 나머지 비어있는 공간, 즉 휴식처와 공원의 역할을 하는 '패티오(Patio)'도 이때 등장했다.

"OMA와 협력해 송도국제도시에 멀티미디어의 '미디어'와 실리콘밸리의 '밸리'를 따서 '미디어밸리'라는 이름의 정보통신기술 산업단지를 조성하려 했지요. 그런데 IMF 때문에…."

청사진을 꿈꿨던 송도국제도시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으며 전면 중단되고 만다. 새로운 기업 포스코와 게일이 등장하며 송도국제도시 개발 계획은 변경된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인천일보·인천도시역사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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