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판 안벽 산 업체들 "철거비용 떠넘겼다" 무효주장
상선 "사전 고지 안했다" 인정, 해수청 "사기 친 것과 다름없어"
▲ 인천일보가 입수한 현대상선과 D사 등 4개 업체 간 작성한 안벽 사용 합의서. 합의 내용 3번째에 미사용 시 안벽 철거 등 문구가 삽입돼 있지만, 시설물 원상복구 조항과 철거 사유, 철거비용 등 안벽 사용과 관련한 주요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 상태다.
인천항 민간 항만시설 소유권 이전 문제가 현대상선의 '기만극'으로 치닫고 있다.

현대상선에게서 안벽을 넘겨받은 업체들은 현대상선이 향후 수 십억원의 철거비용을 물어야 하는 '시한폭탄'을 은근슬쩍 떠넘겼다며 안벽 소유권 이전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18일 인천 중구 인천해수청 회의실에서 현대상선과 안벽(면적 2044㎡)을 인수한 D사 등 4개 업체를 불러 최근 인천일보가 보도(7월11·12일자 1면·17일자 7면·18일자 6면)한 안벽 소유권 이전 문제의 진상 조사를 벌였다고 19일 밝혔다.

현대상선은 이 자리에서 자사 소유 안벽을 4개 업체에 이전하는 과정에서 안벽 관련 모든 책임을 넘겨받는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4개 업체가 접안·하역시설로만 사용할 수 있는 안벽을 임대료만 내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국유지'로 착각할 수 있었던 데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인천해수청은 현대상선이 안벽 사용 이전의 주요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것에 황당함을 나타내며 "사기를 친 거나 다름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대상선이 공유수면 점·사용 시설의 권리·의무 이전을 신청할 때 인천해수청에 제출한 '안벽 사용 합의서'에 대해서도 '부실·부당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 업체는 "현대상선 측이 우리에게 찾아와 도장만 찍어 간 합의서엔 '철거 문구'만 있지, 시설물 원상복구 조항도 없고 언제 철거하게 되고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업체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안벽을 사용했다면 수 십억원의 철거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안벽이 알고 보니 '시한폭탄'이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업체들은 현대상선이 원상복구 명령을 받은 안벽의 철거비용을 아끼고자, 안벽 사용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슬쩍 떠넘긴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에 '안벽 소유권 이전 자체가 무효'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현대상선 측에 보내기로 했다.

인천해수청은 현대상선의 잘못이 확인됨에 따라 공유수면 점·사용 시설의 권리·의무 이전을 취소하고, 현대상선에 안벽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문제가 된 중구 항동7가 부지 및 안벽을 범현대그룹 4개사(현대자동차·현대건설·현대중공업·현대제철)와 공동 소유했었기 때문에 이들 회사와 함께 이번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 지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박범준 기자 parkbj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