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경찰대 법학과 교수
우리나라 형사재판이 선진국과 비교되는 가장 큰 특징은 주권자인 국민 참여가 철저히 배제돼 있다는 점이었다. 입법권이나 행정권이 대의민주제에서 나아가 참여민주제로 발전하고 있음에 비해 유독 사법권만은 오랫동안 국민주권 이념이 배제된 채 판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영국·미국·캐나다·호주 등 영미법계의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만장일치제로 유·무죄를 결정한다. 법관은 재판 진행만 담당하는 배심제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는 직업 법관과 시민들이 함께 유·무죄를 결정하는 참심제로 재판을 한다.

근대 민주주의 태동 이후 선진외국에서의 사법권 영역은 직접민주제를 실현하는 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되었다. 그간 선출되지 않은 소수 직업법관에게 사법권을 독점하게 한 우리 제도가 오히려 비정상이다. 이런 국민배제형 형사재판은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국민배제형 형사사법을 극복하는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이 국민참여재판의 도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사법개혁의 대표적 결실이다. 2008년 2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국내외 언론의 열띤 취재 속에 국내 사법역사상 최초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입법 당시 약 5년간 시범실시한 후 대법원에 국민사법참여위원회를 구성해 우리 사법환경에 적합한 최종형태를 결정하도록 명시했다. 시범실시라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에는 권고적 효력만을 부여했고, 사건 수를 연간 100~200건으로 제한하기 위해 피고인이 신청한 때만 실시하되 신청하더라도 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상소심에서 번복도 금지되지 않았다. 시범이라는 명목으로만 가능한 과도기적 입법이라 할 것이다. 그간 비록 시범실시였지만 실제 재판실무에도 많은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조서재판, 졸속재판의 관행을 치유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증거에 기초한 재판이 실현되고 있다. 수사기관 조서에 의존하는 재판이 아니라 법정에 제시된 증언과 물증으로 판단하는 '재판다운 재판'이 실현된 것이다. 이는 억울한 처벌을 줄이는 토대다. 배심원 평결의 93%가 그대로 판결로 이어져 비전문성의 우려도 기우였다. 국민 상식과 법감정에 부합하고, 권력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배심원 평결이 구속력을 가진다면, 변호인은 법관 인맥쌓기가 아니라 변론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법조유착을 근절하는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2013년 대법원 산하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구성되어 최종 형태를 반영한 법 개정안을 법무부에 보냈다. 판사에게 배심원 평결에 대한 존중 의무를 부과해 평결에 사실상 구속력을 부여하자는 게 골자다. 피고인이 신청하지 않아도 법원이 직권으로 참여재판을 할 수도 있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청사건 중심으로 실시되고 배제결정이 쉽게 허용된다면 일부 재판에만 적용되는 전시성 제도에 머물 우려가 있다. 누적통계를 보면 전체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 중 실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된 경우는 1%대에 그쳤다. 그런데 당시 법무부에서는 한 술 더 떠 별도 추가 개정안을 내놓았다.

논란을 빚었던 공직선거법위반을 대상사건에서 제외시키고, 검사에게 배제결정 신청권을 부여하며, 배심원평결을 배척할 수 있는 사유를 확대하는 등 참여재판을 위축시키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입법부에서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올해는 어느덧 국민참여재판 시행 10주년을 맞는 해다. 이제 최종형태를 결정하여 본격 시행하는 일은 사법의 민주화를 위한 시대적 과제다. 본격 실시에 걸맞은 제도로 거듭나기 위해선 과도기적 입법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명목상 제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배심원 평결에 원칙적으로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만장일치제나 적어도 절대다수제 평결 방식을 채택한다면 유·무죄 판단에 오류 개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 다양한 사회 경험과 상식으로 집합된 의사결정체의 사실 판단이 그 정확성에서 소수 직업 법관만의 판결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이는 이미 서구의 실증적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항이기도 하다.

구속력 부여를 반대하는 입장에선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조항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헌법의 최상위 가치인 국민주권 이념에 비추어 볼 때 법관의 주재·관여하에 진행되는 배심재판을 위헌으로 내모는 것은 사법 권위주의에 천착한 반민주적 발상이다. 이러한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안에서는 배심재판의 합헌적 근거를 명시하기도 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 신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재판다운 재판을 실현하는 토대가 되고, 무전유죄 유전무죄, 법조유착, 전관예우 등 국민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사법 불신을 치유하는 해법도 된다. 시민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재판에선 이들이 뿌리를 내릴 터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국민참여재판의 본격 시행은 민주주의 발전과 사법선진화 등 각별한 시대적 가치를 지닌다. 국민참여재판이 본격적으로 시행돼야 할 이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