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인하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
건강 수명이 옛날에 비해 길어졌다. 요즘 60세 환자들은 필자의 초임 의사 시절 60세 환자에 비해 10~15세는 젊어진 것 같다. 환경이 좋아지고 의료가 발달해서다. 그래서 요즘은 급성질환으로 인한 갑작스런 사망도 많지 않다. 대개 나이가 들어 암이나 노환으로 사망한다. 반면 임종 모습은 옛날보다 쓸쓸해졌다. 한해 사망의 75%, 특히 암 환자의 85% 이상이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중환자실에서 의료진 외에는 가족을 못 보고 외롭게 죽어간다. 과거에는 '객사는 안 된다'는 인식으로 어떻게든 마지막에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 애도 속에 임종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이제 그런 일은 희귀한 일로 변했다.

90년대 초까지는 보호자 요청으로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은 기도내관(氣管內管)만 유지한 채 퇴원해 집에 도착한 후 관을 제거하면서 가족과 임종을 맞기도 했었다. 그런 관행은 94년 '보라매 병원 사건'으로 자취를 감췄다.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외상 환자를 배우자 요청으로 퇴원시켜 사망하게 한 의사들이 처벌을 받은 사건이다. 이 판결의 충격으로 병원과 의사에게 연명치료 중단은 금기처럼 되었다. 많은 말기 환자도 마지막 순간까지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있어야 했고, 가족들은 그 고통을 나눠 져야 했다.

그러던 중 15년 후 정반대 사건이 일어난다.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으로 1년 넘게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는 할머니의 보호자가 생전 할머니 뜻에 따라 병원에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였지만 병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쟁은 소송으로 진행되었고, 2009년 5월 인공호흡기 사용 중단은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대법원 판결로 종결되었다. 세칭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2016년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고, 올해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작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나 임종을 앞둔 환자가 자기 결정이나 가족 동의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연명의료중단결정에는 '회생이 불가능한지'와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는지'가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 치료가 무의미하지 않고 말기가 아닌 환자들은 오히려 치료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보라매병원 사건'의 경우 환자에게는 회복 가능성이 있고 인공호흡기 치료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의료진은 배우자 요청보다 환자의 권리 보호를 우선 했어야 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회생 불가능'과 '연명치료 무의미성'이 연명의료중단결정의 전제 조건이라면, '환자의 자발적 意思' 확인은 결정 조건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었으면 자기 결정을 법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서류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적당한 때 자기 의사를 가족이나 의사에게 표현해 두었으면 나중에 가족 2인과 담당의사 확인 절차를 거쳐 그 결정을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런데 평소 의향을 밝힌 적이 없거나 들은 사람이 없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환자의 가족 전원이 모여 동의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여간 복잡하지 않다. 제도 도입 후 가장 큰 난제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우리나라에선 거기에 더해 '
죽음은 억울하고 비참하다'는 정서까지 있어 분노와 슬픔의 강도를 높인다. 이러한 의식으로 죽음이 닥쳐 왔을 때 잘 다루지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마지막 시간을 허비한다.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죽음을 낭비하게 된다. 삶의 마지막 시간 가족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자손들에게 지혜와 교훈을 주고 떠남은 아주 소중하다. 의사 생활 동안 그런 의연한 임종을 몇 번 볼 행운이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서류를 통해 수동적으로 생을 마침은 슬픈 일이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 삶의 여정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은 소중한 시간을 쓰기로 마음 먹는 게 더 나은 결정일 수 있다.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완화(호스피스) 의료이다. 어쩌면 그것도 어려울지 모른다. 관행대로라면 이미 말기가 되었을 때 의사나 가족이 당신에게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을 계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안녕'을 고하면서 '원 없이' 헤어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