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복 터진개문화마당 대표
얼마 전 상해를 다녀왔다. 20년 만이었다. 한·중수교 이후 뻔질나게 드나들던 중국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발길이 내키지 않던 차에 다녀온 여행이었다. 필자에게 여행이란 고행과 숙제라는 등식이 늘 따라 붙었다. 몸이 불편하지 않는 한 걸어 다니는 걸 우선으로 했고 현지 식사와 대중화된 숙소를 고수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고단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러한 원칙을 지키려 했던 데에는 여행지에 대한 실질적 체험과 현지의 일반화된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방문지마다 생소했지만 역사성과 문화성에 견줬을 때, 친근하고 긴밀함을 새삼 확인했다. 무엇보다 어느 낯선 곳을 가든지 사람이 살아가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는 점이 커다란 배움이자 즐거움이었다.

여하튼, 상해는 수차례 방문의 경험이 녹아든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여행자의 눈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의 눈이었다. 현지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조차 이방의 눈길로 쏘아대듯 바라보는 황포강 일대와 난징로, 신천지, 각국조계 등지에서 마주치는 족족 생경한 시선들이었고 조심스러운 공간이었다. 엄청난 인파가 조수처럼 거리를 쓸고 다녔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에 버금갈 정도였다.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도시 구석구석을 잇는 전철과 깨끗해진 거리, 각종 서양식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은 굵직하게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였다. 예나 제나 저녁 무렵 광장을 점령한 군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죄다 이방인들이었다. 벽면을 장식한 문구는 계도선전보다는 부강·민주·법치·문명·자유·평등·공정· 애국 등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으로 부상한 말들로 채워져 있었다.

장정구(區) 외적인묘원(外籍人墓園)에서 찾은 우리 독립운동가의 흔적들은 묘역 이전 당시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단출한 화강석에 이름 석 자만 박혀 있었다. 노백린·신규식·박은식·김정식·조상섭·안태국·김인규·이영선·임규호·박영규, 그리고 무명씨들. 더군다나 수없이 많던 서양인의 독특했던 묘비들은 죄다 어디로 갔는지 황당무계까지 했다. 불현듯 청학동 외국인 묘지가 떠올랐다. 묘지 이장을 그렇게 반대했건만…이라 쓰고 역대 만석동·청학동·부평공동묘지로 이장하고만 인천의 현황이 연상되었다. 일천하기 이를 데 없는 역사문화 인식을 가진 당시 위정자와 그 부역자들의 행태였다고 단언해 본다.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가 지난 흔적을 간직하고 그나마 반면교사 구실을 하지만, 이마저도 일본 나가사키·요코하마·고베·오사카·하코다테 등지에 존치한 외국인묘지에 비하면 성의표시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역사를 뛰어넘고 국가를 초월해 범세계적인 문화의 질료로 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계기였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했던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의 인천 샅샅이 살펴보기 '인천장정'의 탄생 배경은 이러했다. 세계적 존재로서 인천에 대한 인문학적 갈증을 풀고자 여행자유화 조치에 맞춰 경험했던 물길 밖 세상에서 역으로 찾아낸 방안이었다. 해반문화사랑회의 '우리지역 바로알기 답사'와 '인천 바로알기 종주단' 등이 인천 정체성이란 화두에 혼불을 놓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다양한 경로와 방법, 노고의 세월을 통해 어느 정도 인천 정체감을 시민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들 단체가 찬사를 받을 이유는 충분했다. 이러했던 토대에서 역사·문학·미술 분야에서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작가들의 도약은 지루한 정체성 논란을 딛고 한 걸음 더 인천다운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문답으로 엮은 인천역사', '변사기담', '인천, 담다' 등은 작가 발군의 실력을 넘어 회색으로 점철되었던 인천 정체성 '심짓불' 놓기 운동의 결과물이라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유수한 노력의 결과물이 많지만 발품 영역이 좁아 미처 소개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인천 시민사회운동의 큰 획으로 떠오르는 '북성포구 살리기 시민모임'이나 인천환경운동연합이 근자에 세계 이목을 끈 바다 퍼포먼스 등은 미래의 인천 정체성 확보를 위한 몸짓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여독이라 했던가. 남들 다 가는 길인데 유독 여행만 다녀오면 체독을 삭히기 점점 수월치 않다는 걸 느낀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음에도 엄살 부리듯 복지부동하는 데에는 변명조차 변명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관성의 법칙을 따를지 자체 발광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인천이 인천답기 위해서는 더 많은 류(類)의 인천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