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오늘도 출근길이 좀 민망했다. 차가 아파트 정문을 나서려니 어김없이 경비 아저씨가 거수경례를 보내온다. 그것도 부동자세에 매우 절도 있는 동작으로. 머리 허연 어르신의 경례를 기대앉아 받는 일이 편치 않다. 그 때마다 차를 세우고 "그러시지 말라"고 얘기하려 했지만 또 지나쳐 왔다. 대체 누가 언제부터 이런 일을 시키고 퍼뜨린 걸까.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때도 거수경례가 논란이 됐다.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에게 거수경례로 답례했다. 이를 두고 미국내 일부에서 "쇼맨십이 지나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어쨌든 70여년간의 적대관계였던 북한군이 아니냐는 거였다. 반론도 있었다. 트럼프가 그동안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종종 거수경례를 해왔다, 노 인민무력상이 먼저 거수경례를 했으니 그렇게 답례한 것 아니냐는 거였다.
▶거수경례의 기원에도 몇가지 설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설은 중세 기사들의 전통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중세 기사들은 결투에 나서면서 먼저 "나는 어느 가문의 아무개이다"라고 밝혀야 했다. 이 때 투구의 눈을 가리는 부분인 바이저를 오른 손으로 열어 젖히던 동작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 유래설도 있다. 로마 시민들이 공직자를 방문할 때는 "나에게 무기가 없다"는 걸 입증해야 했다. 이 표시로 오른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것이 기원이라는 것이다. 이 동작은 나치 독일과 파시즘 이탈리아 군의 경례동작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들며 인사하던 동작이 변형됐다는 설도 있다. 이때 헬멧이나 턱끈 달린 모자를 썼을 때는 그냥 오른 손만 갖다댔다는 것이다.
▶거수경례를 전투 중에 하면 '여기 지휘관이 있다'고 알리는 격이 된다. 적의 저격수에게 좋은 타깃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래서 전투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군에서 경례를 금지하고 있다. 과거 일본군은 전투 지역에서도 큰 소리로 경례를 하게 해 저격수에 의한 피해가 컸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거수경례가 한국의 아파트 문화로 굳어 있다. 들리기로는 아파트관리사무소측의 군기잡기용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어떤 이는 아파트부녀회나 입주자대표회의 등의 갑질의식이 낳았다고 한다. 군사 문화의 잔재라고도 한다. 군사 문화든 글쟁이 문화든 그런 차원이 아니다. 아이들 교육에도 아주 나쁜 본보기다. 평생을 일하고도 다시 일을 잡으신 분들이다. 그 분들의 여생에서 '부동자세 경례' 짐만이라도 내려 드리자. 우리 스스로가 바로 나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