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위원
세계 인쇄술의 불가사의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 보관했던 시기는 1251년~1398년이다. 몽골침입에 맞서려고 1236년부터 판각을 시작해 1251년 8만여 장을 완성한 이후 150년 간 강화도가 품고 있던 보물이다.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대장경이 지금의 해인사로 이관된 때는 조선 건국 6년 뒤인 1398년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7년(1398) 5월 임금이 용산강에 행차해 강화 선원에서 운반해온 대장경을 보았다' '경상감사에게 명해 해인사의 대장경을 인쇄하는 승려들에게 공양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옮겨진 정확한 이유와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왜구 등으로부터 대장경을 더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구중심처를 찾아 지금의 해인사로 갔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이운경로 역시 연구해야 할 중요 과제다. 8만1258장의 경판을 땅에서부터 쌓으면 3200m로 한라산(1950m)·백두산(2744m)보다 높다. 이를 옮기려면 적어도 2.5t트럭 100여대, 4t트럭 70대가 필요하다. 당시 엄청난 우마차와 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닷길로 갔는지, 육로로 갔는지 어떤 루트로 대장경을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로선 해로를 주로 이용하고 일부 육로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대장경의 내용은 '부처님 말씀'이다. 기원전 544년쯤 부처가 입적한 이후 제자들은 부처님 말씀을 모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제자들은 부처의 가르침인 경(經), 부처가 정한 교단의 규칙인 율(律), 이들을 해석한 논(論), '삼장'(Tripitaka, 세 개의 광주리)을 기록했다. 손오공에 나오는 삼장법사는 경율논을 통달한 승려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팔만대장경 판각은 고려인들이 불력으로 몽골침략을 막으려는 염원에서 시작한 대역사였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불교사상과 지식을 집대성한 '불교지식의 총체'라는 점이다. 여기에 정교한 목판인쇄술이란 하이테크 기술이 결합해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술을 탄생시켰다. 수년 전 기획취재를 위해 해인사를 찾았을 때 깜짝 놀란 것은 800년 가깝게 채광과 바람만으로 보존해 왔음에도 인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관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처님 오신날'인 어제, 강화도의 팔만대장경이 더욱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