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수 인천도시역사관장
"잠깐! 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언뜻 보아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재활용 쓰레기 배출에 관한 문구 같지만, 서울의 어느 박물관이 수년동안 사용해 오고 있는 슬로건이다.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가 훌륭한 유물이 될 수도 있으니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박물관에 기증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 이상 쓸 수 없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이미 버린 물건을 뜻하는 '쓰레기'를 박물관에서 왜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쓰레기는 인류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사용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먼 옛날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활상을 살펴 볼 수도 있다. 과거의 쓰레기 더미를 발굴하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그 시대 삶의 모습을 복원하는 학문을 '쓰레기 고고학(garbage archaeology)'이라 한다. 인간은 용변을 보거나 무언가를 버릴 때, 항상 일정한 장소를 이용하는 본능이 있다. 그런 탓에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가 쌓여서 '쓰레기 유적'이 되고, 이를 발굴해서 연구하는 쓰레기 고고학이 탄생한 것이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패총, 즉 조개무덤도 쓰레기 유적 중 하나다. 반농반어의 생활을 겸했던 신석기 인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 조개껍질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곳을 패총이라 한다. 신석기 시대에 쓰레기 분리수거가 있었을 리 만무하고, 자연스레 당시 사람들은 여기에 조개껍질뿐 아니라 못 쓰게 된 생활 쓰레기를 함께 버렸을 것이다.

조개껍질과 함께 묻혀 있는 돌칼, 돌도끼 등은 당시 쓸모없이 버려진 생활 쓰레기에 불과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 시대 생활상을 알려주는 훌륭한 유물로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패총은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쓰레기 유적이기 때문에 기록으로는 알 수 없는 선사시대 인류 생활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쓰레기에 대한 박물관의 관심은 쓰레기 유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쓰레기는 종종 훌륭한 전시품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몇몇 작가들은 버려지는 물건을 활용하여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 '쓰레기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작년 여름 국립민속박물관은 사람이 쓰레기를 만들고 처리하고 활용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쓰레기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자는 의미에서 '쓰레기×사용설명서'라는 기획전시를 프랑스 국립지중해문명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했다.

조각보 등 버려지는 쓰레기를 활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썼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물건이 전시되었는가 하면, 자칫 버려질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 소개되기도 했다. 쓰레기 유적의 발굴이나 쓰레기 전시뿐 아니라 자칫 쓰레기로 버려질지 모를 유물의 가치를 찾아내는 일 또한 박물관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그런 이유에서 박물관은 버려질 위기에 처한 유물을 수집하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다.

최근 인천도시역사관은 어느 시민으로부터 귀중한 자료 몇 점을 기증받았다. 기증자는 지난해 돌아가신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운전면허증과 사진들을 발견하고 이를 태울까 고민하던 끝에 도시역사관에 기증해왔다. 수십 점에 달하는 기증 자료는 인천의 도시 역사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특히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과 1943년 경기도에서 발급한 보통면허증과 특수면허증은 아마도 인천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운전면허증이 아닐까 싶다. 함께 기증한 부친의 사진 속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인천 곳곳의 모습도 담겨 있다. 손때 묻은 유품 덕분에 자칫 묻혀버릴 뻔 했던 인천 역사의 단면을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최근 박물관에 기증되는 유물의 면면을 살피면 개개인의 생활사 자료가 늘고 있다. 학창시절 버리지 않고 모아둔 학생 잡지나 회수권 등을 기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돌아가신 할머니의 재봉틀을 선뜻 박물관에 내주는 이도 있다.
어찌 보면 그저 하찮은 폐지나 고물일 뿐이겠지만, 박물관에서 이들은 그 시절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사하거나 집을 정리할 때 쌓이는 쓰레기 더미, 이들을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에게는 쓸모 없어진 물건일지라도 혹시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거나 엄청난 가치를 지닌 유물일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