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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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군가 자녀로 출생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마음의 눈, 신체의 눈, 정신의 눈을 뜨게 하고 사고의 방향·내용·방법을 일깨워 사고력의 지평을 넓혀 준다. 그리고 '부지런 해라' '고운 말을 해라' '꿈을 지녀라' '멀리 보라' '함께 가라'고 독려하면서 인간의 기본적 자질을 함양시킨다. 그 후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누군가의 제자 신분을 갖게 된다. 부모에게서 바톤을 넘겨받은 교사는 '나만의 개성과 차별성에 주목하라' '왜라는 호기심을 키워라' '메모하고 기록·정리하는 습관을 가져라' '만약에'라는 상상력을 키워라' 라는 장기적·역사적 안목, '어떻게'라는 분석력·변별력·해석력·대응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자기·시간관리에 철저하라' '인맥과 팀워크를 중시해라' 등의 가르침을 주는 게 정도다. 그런데 교과 위주의 암기력 경쟁, 시험 위주의 정형화한 문제 풀이의 반복 훈련, 입시와 진로에서의 경쟁력 등을 위해 모두 '스펙'을 쌓느라 정신이 없다. 그 결과 놓치는 게 너무 많다. 지면 관계상 두 가지만 생각해 보자.

첫째, 지혜와 예술성, 고도 신뢰와 도덕성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사람은 점수를 받는 대로 움직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적과 교과 점수만을 강조하는 학교 교육에서 이기적 개인주의, 정체감의 상실, 정신 불건강, 인간미 상실, 건전한 의식과 가치관의 미정립, 개성과 다양성의 소멸 등은 아주 자명하다. 교육학계 태두(泰斗)인 정범모는 미래 사회를 "점점 더 고도화한 기술·정감·신뢰가 필요한 사회"라고 했다. 고도 기술은 지력에서 오고, 고도의 정감은 예술성에 연유하며, 고도 신뢰는 도덕성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지혜와 정서지능, 신뢰와 도덕적 지능을 키워주기를 거부하는 가정과 학교가 아닌가. 모두가 시험 준비와 시험 기술 연마에 열중하고 있다. 그 결과 신체적·지적·정서적·사회적·도덕적·종교적 심약증 아이와 어른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시험선수는 시험 선수일 뿐 지도력의 선수, 사명감의 선수, 청렴성의 선수, 창의력의 선수는 아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시험 위주 등용문을 거쳐 각계 각층의 지도자로 등장해 국가경영을 맡을 때 내일의 국가 경영은 암담할 것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저서에서 밝힌 "1960년대 초반 미 행정부를 이끈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미국 정부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인 외교정책(베트남전 패배)을 만들었다"고 주장한 것과 맥이 통한다.

둘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교양인으로서의 언어 습관을 형성·발달시켜야 하는 데 이를 놓치고 있다.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아 초등학생들이 운동을 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언어 습관이 심각하게 오염됐음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남·여 중고생들이 떠들며 지나가는 한 발 뒤에 10분만 뒤따라 가면 두 세마디 말 끝에 듣기 민망한 '쌍소리'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전철역이든 전동차 안이건 대학생 수준의 학생들이 휴대폰 전화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성인과 노년세대의 말들도 예외는 아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인과 영화,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교사의 책임 또한 많다.

지금의 한국인들은 TV세대요 매스컴 세대이다. 특히 40대 이하는 인터넷·UCC·디지털 모바일 세대이다. 그 활자·전파·영상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오염되고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재음미할 때다. 70년대 말 루니 박사는 '일반적으로 14세때 쯤이면 TV에서 1만8000여건의 살인을 목격하고,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시간동안 폭력이나 폭언을 보고 듣게 된다'며 TV의 악영향을 지적했다. 카펠 박사 역시 '어린 시절의 귀중한 시간 중 1만4000여시간을 빼앗아 가는데, 그것은 하루 8시간씩 꼬박 4.9년동안 계속 TV앞에 앉아 있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다'라며 그 심각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젠 TV와 영화 그리고 '오염의 바다' '쓰레기 악성 정보 창고'인 인터넷과 트위터 등 SNS가 문제다.

교사를 포함해 입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인들은 변해야 한다. 현재의 국어 교육이나 외국어 교육이 아닌 '스피치 기법'을 익혀야 한다. 고대 그리스 희곡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을 모두 읽고 그의 풍자와 익살스런 독창성, 그리고 상상력이 동원된 스피치를 배워야 한다. 프랑스 몰리에르의 모든 작품을 정독하면서 그의 표현력, 재치 있는 언어 구사력, 마크 퉤인의 수준 높은 기지와 해학, 버나드 쇼의 위트와 유머, 오스카 와일드의 익살스런 풍자와 기지를 익혀야 한다. 그 밖에 유명한 소설가들의 단편이나 저명한 극작가들의 희곡들을 다시 읽으며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