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이뤄지는 재판에선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민배심법정에선 이기고 지는 사람이 없다. '합의와 승복'이 있을 뿐이다. 평결 결과에 대해선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권위가 부여된다. 시민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고, 토론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평결방식이기 때문이다. 수원시가 전국에서 처음 도입해 시행하는 시민배심법정은 도입한 지 오래지 않아 많은 성과를 내지는 않았지만, 몇몇 사례에서 봐도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쟁을 풀어가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또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 실천방식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지난 2015년 광교동 2개 지역을 통과하는 신분당선 역사 명칭을 두고 주민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당시 경기대에선 '경기대역'으로 하자며 집회까지 열며 반발하는 상황이었고, 용인주민들은 '상현역'으로 하자고 맞섰다. 판정관과 시민배심원들은 이 지역에 공공시설이 많아 지역발전 가능성이 많다는 점과 설문조사 결과를 기초로 '광교역'으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평결 이후 오랫동안 지속했던 주민 간 갈등은 더 이상 유발되지 않았다. 더 눈여겨 볼 만한 사례도 있다. 2012년 2월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시민 간 분쟁이 본격화할 당시 일이다. 시민 232명이 신청인 자격으로 법정 요구했고 재판이 열렸다. 변호사 2인과 다수 시민들이 판정관과 배심원으로 법정에 앉았다. 피신청인은 사업추진 당사자인 수원시 공무원이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재개발사업 취소와 토지소유자 등에 대한 설명 및 의견조사 등이다. 열띤 토론을 마치고 판정관과 배심원들은 "향후 재개발사업을 지속하는 데 토지소유자들이 동의하는지,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업취소 여부를 결정하라"고 판결했다. 평결은 수원시에 '재개발사업구역 의견조사 및 취소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수원시 시민배심법정은 마치 원자력발전소 신고리 5,6호기의 지속성 여부를 결정했던 문재인 정부의 공론화위원회를 연상케 한다. 비록 그보다 사안은 작지만 시민생활에 더 밀접하고, 직접 부딪히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낸다는 점에서 이 또한 절실한 문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