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문화심리학적 측면에서 동쪽과 서쪽에 대한 의미는 지난 칼럼(인천일보, 2018. 2. 12)에서 언급했다. 문제는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국가별 지역별로 방향이 정해진다.
예수가 태어날 때 동쪽 별을 보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와 경배를 드린다. 싯다르타 왕자는 어느 날 성문 밖 사대문으로 나가 동문 밖에서는 늙은 노인들을, 서문 밖에서는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을, 남문에서는 병든 환자들을, 북문에서는 수행(修行)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보고 인간의 생로병사 문제에 대한 고뇌에 빠지게 된다. 방향마다 상징성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류 역사가 산에서 시작된다. 예루살렘에는 두 개 산이 있다. 동쪽의 에덴동산은 인간의 탄생과 사랑, 행복과 인류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서쪽의 모리아 산은 ①세 번이나 세워졌던 성전이 결국 무너진다. ②100살에 겨우 낳은 외아들(이삭)을 제물로 아브라함의 신앙심을 테스트해서 이삭이 '거의 죽었다' 살아난 곳이다. ③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 곳이다. 그 밖에 동쪽과 서쪽 관련 자료는 많다.
부활절(축제)의 초는 'Easter candle', 부활절 계란은 'Easter egg', 축하(축제) 카드는 'Easter card', 각 분야 중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동부 주류파(Eastern establishment)'라고 한다. 공자가 초나라 국경을 지나다 뽕을 따는 두 여인을 보고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의 경우 얼굴이 예뻤고, 서쪽 여인은 못 생겼다 하여 "동지박(東枝璞) 서지박(西枝縛)"이라고 농을 했다는 얘기, 제 나라 때 두 곳에서 딸의 청혼을 받은 부모가 딸에게 "동쪽 집 아들은 못 생겼지만 부자고, 서쪽 집 아들은 잘 생겼으나 가난하다"는 '東家食 西家宿' 이야기. 중국의 서쪽 변방의 진(秦)나라는 이웃 제후국들로부터 문화적으로 멸시를 받는 호전적이며 잔혹하고 포악한 나라로 불렸다. 춘추시대 첫 번째 패권을 잡은 동쪽의 제(齊)나라는 내치를 잘해 안정된 나라로서 환공(桓公)이 유능한 인재를 만나기 위해 동쪽 교외에서 은둔 생활중인 자를 다섯 번 찾아가 겨우 만났다는 기록들도 지역적 의미를 보인다.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왕자 달마는 동쪽으로 가서 중국 대승불교의 승려로 되었고,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에서 동쪽은 청정지역, 초월의 땅, 차원 높은 지역, 누구나 가고 싶은 선망의 땅으로 묘사되고 있다. 호주 영화 '프리실라(Priscilla)'에서 "서쪽으로 가자(go west)"고 외치는 그 서쪽은 사막, 중심에서 소외, 저항의 땅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라이트 형제는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투자할 사람을 찾기 위해 동쪽으로 눈을 돌려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까지 가야 했고, 재봉틀 발명가 엘리어스 하우(Elias Howe)도 구매자를 찾아 동쪽으로 눈을 돌려 대서양 건너 영국으로 갔다.
헤밍웨이 역시 대작(大作) 집필의 꿈을 갖고 쿠바 아바나에서 동쪽인 어촌 코히마르로 향해 그곳에서 20년간 위대한 작품을 썼다.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은 청정지역인 동해, 꿈꾸었던 희망의 세계를 노래한다. 왕세자가 사는 공간은 동궁(東宮)이고 황후와 태후의 거처 공간은 서궁이며, 병자호란 때 인조가 치욕의 항복을 하기 위해 나온 문은 서문이다. 또한 메이지신궁(明治神宮) 동서남북 네 개 문 중 정문으로 통하는 문은 동신문이고, 나가는 문은 서쪽의 서신문이다. 이 역시 동·서쪽을 의미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은 오래 살려고 동쪽으로 뻗은 소나무 뿌리 달인 물을 장복했고(전 주치의 김소연 박사), 뮤지컬 '위키드'와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은 나쁜 서쪽의 마녀다. 특히 링컨은 저격을 당하기 6일 전 '관에 실려 물위에 떠서 서쪽으로 흘러가다가…'라는 꿈을 꾸다가 깼다고 한다. 흉몽이라 외부 출입을 자제했다. 그러나 부인이 '영화 관람을 가자'기에 꿈 얘기를 하며 꺼려했지만 "그딴 꿈이 맞는가"라며 재촉하여 극장을 가다가 총에 맞아 비명에 갔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동해바다 산해관에서 출발하여 중국 대륙을 횡단, 서쪽 라오룽터우(老龍頭)에서 용의 머리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고 한다. 용이 승천하지 않고 바다로 간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원제 'North by Northwest'이므로 '노스웨스트 비행기를 타고 북으로'가 맞다), 그리고 대중가요 '서쪽으로 간 여자' 등 서쪽 관련 작품에서는 전쟁, 위기, 공작, 공격, 위협, 배신, 후회, 저주, 이별 등이 읽혀진다.
우리는 지금 동·서쪽이 다 불안하다. 경주와 포항의 지진 트라우마,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문제, 서해에서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 등이 그렇다. 사건이 터지면 절절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도무지 믿음이 안 간다. 하지만 역경에 강한 민족답게 서로의 특성을 이해·보완하고 강점을 살려 한국호의 비상을 도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