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사회부장
정말 놀라울 뿐이다. 한국지엠을 둘러싼 최근 반응들이 마치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진정 한국지엠의 현 모습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불안불안한 한국지엠 행보는 수년간 꾸준히 지속돼 왔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란 말이다. 2013년 12월 한국지엠은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 철수를 선언한 바 있다. 당시 유럽 수출 대부분은 한국지엠 몫이었다. 특히 부평공장 축소 규모는 연간 10만대 정도로 유럽 철수 규모의 50%를 넘는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평공장을 중심으로 지역 협력업체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또 수출 물량 감소로 인천 경제에 30%를 차지하고 있는 인천항의 활성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곧 고용시장 불안으로 이어졌다. 한국지엠은 인력 대폭 축소 계획을 밝히며 정년퇴임 등 자연감소 인원 2000여명에 대한 추가 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한편 사무직 희망퇴직까지 고려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에는 한국지엠이 인기가 높았던 임팔라를 국내 생산 대신 수입 판매한다고 밝혀 우려를 확대했다. 가뜩이나 생산 물량 감소가 이어지고 있던 터라 임팔라 부평공장 생산은 곧 지역 경제활성화, 고용불안 해소 등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해에는 한국지엠 철수설이 본격화됐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지엠 지분 17.02% 매각설에다 산업은행 특별결의 거부권이 10월 종료되면서 더욱 가속화했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 사이, 수출 예정인 신차들로 넘쳐나던 인천항 야적장은 한적하기만 하다. 또 차마 현실이 될 줄 몰랐다가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설 명절을 앞두고 폐쇄를 결정했다. 최근 너나 없이 떠들고 있는 한국지엠 문제점이다.

GM이 한국지엠에 조달한 자금에 5% 이상 고금리 이자율을 적용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미국 트럼프 정부 이전 이야기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대책을 마련할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이런 위기가 당혹스럽다는 듯 떠들고만 있다. 군산공장 폐쇄 전에는 여당을 비롯해 인천시도 부평공장 폐쇄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산공장 폐쇄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보여주는 최근 모습들은 그야말로 뒷북이다. 공장 폐쇄 하루 전에도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군산시 모습이 인천시에 '오버랩'될 수 있다.

사실 인천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지엠 사업장 중 가장 큰 규모의 부평공장이지만, 인천의 경우 정확한 정보와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부평공장은 1·2차 협력업체 500여 곳에 직접 고용 인력만 1만1000여명에 달한다.
인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한국지엠 경영진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대우자동차에서 지엠대우, 한국지엠으로 건너오면서 인천은 지엠차 팔아주기운동 등도 벌여왔지만, 경영진·지자체·정치권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한국지엠이 정작 지역 사회와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정치권은 뒤늦게 입장을 발표하거나, 현장 간담회 등을 열며 보여주기식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는 것도 없고,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숟가락이나 얹자는 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역 현장에서는 군산공장 폐쇄 이전부터 부평공장 철수설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오랫동안 생산 물량 감소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한국지엠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을 바라보는 인천 경제 현장과 정치권, 정부 간 온도차는 매우 크다. 정부 역시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갖가지 걱정에 대해 허술하게 대응해 온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경기 상황은 날로 어려워진다. 기업 하나가 자리잡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대우자동차를 시작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길 만큼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기업은 더욱 그렇다. 2000년 당시 위기에 놓여 있던 한국지엠 전신 대우자동차는 한 마디로 고통이었다. 구조조정 위기에 아들이 직장을 잃을까 우려한 노모들이 며느리·손주와 함께 나와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인천일보에 갓 입사했던 기자도 손주들의 손을 잡고 길거리를 행진하며 눈물을 흘리는 한 할머니와 함께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들과 사위가 대우자동차에 다니고 있는데, 어찌 살아야 하냐며 세상이 원망스럽다던 할머니의 울음 섞인 하소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호들갑만 떨다 중요한 건 놓쳐버릴까봐 걱정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잃어버렸던 시간들처럼 말이다. 제발 정부와 정치권이 그저 홀로 분주한 것만은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