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70여일의 파업끝에 돌아온 MBC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도 때도 없이 버벅댄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메인뉴스 앵커가 실수로 '평창'을 '평양'이라고 한 것도 '속 마음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압권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중계였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지금 눈이라곤 구경도 못 해봤을 것 같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잘 안 되길 바랐던 어떤 분들도 계실 텐데 그 분들은 진짜 이 평창의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손들고 서 계셔야 합니다. 하하하." 해설자로 나선 개그우먼 출신 김미화씨의 멘트들이다. '평창의 눈이 다 녹도록…'이라니, 심성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쑤군댔다. 이날 MBC의 개막식 시청률은 KBS의 3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지난 연말엔 자사 인턴 출신을 시민 인터뷰로 내보내 조작 논란까지 빚었다. ▶과거엔 MBC가 이렇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방송'이란 소리를 들을만 했다. 오래 오래 전의 '수사반장'이라든가 '전원일기' '장금이' '대학가요제' 등, 절대 다수의 시청자들이 MBC 채널만 붙들고 있었다. 프로그램 장르를 불문하고 온통 MBC였다. 시내버스에도 늘 MBC 라디오만 흘러나왔다. 그래선지 파업을 끝낸 MBC가 떠나간 시청자들을 되돌리기 위해 꺼낸 카드도 '하얀 거탑' 재방송이었다. 10여년 전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해 히트했던 왕년의 MBC 드라마다. ▶되돌아 보면 MBC의 영광은 민주화나 언론자유가 확대되면서 오히려 내리막을 걸었던 것 같다. 참으로 역설적인 모습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MBC는 시청자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오직 '정의'와 '분노'만을 소재로 국민들을 꾸짖으며 몰아가려 한다는 거였다. 'PD수첩'의 광우병 파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논란을 일으킨 김미화씨가 10여년전 MBC 라디오의 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다. 그때도 '코미디언까지 꾸짖으려 든다'며 이웃 종교방송이나 교통방송으로 채널을 돌렸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저런 흑역사가 쌓여 이제 MBC에는 과거 영광을 이끌었던, 그 많던 재사(才士)들은 다 흩어지고 투사들만 남았다는 얘기도 방송가에 회자된다. 가르치려 말고 시청자 곁으로 다가 갈 일이다. 그 '하얀 거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