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몇 달 새 가까운 이들 몇몇을 잃었다. 천수를 누리고 간 분들이야 크게 애달플 건 없다. 하나, 열네 살 처조카나 오십대 나이에 간 후배의 죽음은 충격적이다. 그들 목숨을 거둬간 건 모두 암이다.
암의 다른 이름은 악성종양. 종양 중 악성인 암세포는 일단 발호하면 부단한 자기증식과 분열을 거듭해 영토를 넓혀간다. 전이(轉移)는 암세포가 새롭게 영토를 넓혔다는 것이다. 암세포의 분열과 증식 양상 또한 저마다 제멋대로다. 첨단을 앞세운 예측이나 제어, 통제 밖의 영역이다. 이런 암세포의 생명현상은 마침내 숙주(宿主)가 생명현상을 멈출 때까지 계속된다.

소설가 김훈은 "생명 안에 생명을 부정하는 신생물이 발생해 서식하면서 영역을 넓혀나간다"고 썼다. 암세포에 '악성'이란 수식이 붙는 건 이 때문이며, 공포는 이런 무차별성과 통제 불가성, 크고 빠른 확장성 등에서 온다. 반면 악성 아닌 '정상' 세포는 무한증식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자란 세포는 휴면기에 든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사멸한다. 그게 '정상'이고 자연다운 이치다. 일정 기간 체내 활동을 마친 것들의 조용한 사멸(死滅)과 뒤이은 어린 세포의 신생(新生)이 조화로울 때 몸은 비로소 건강하다.
암과 맞서는 인간의 노력도 치열했다. 덩달아 지난 반세기에서 멀게는 백년 사이, 암 치료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나, 결과는 참혹해 오늘날 암은 질병 관련 사망자 1위다.

가까운 이들을 잇달아 암으로 떠나보내며, 한동안 불안에 시달렸다. 몸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불멸의 세포' '죽지 않는 악성종양'을 떠올렸다. 떠올리며 불멸 또는 죽지 않는 것들의 무서움을 생각한다.
생각 끝에 떠올린 이치는 '생성한 것은 언제고 반드시 사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악성종양인 암세포는 스스로 사멸하지 않는다. 이런 이치는 사회라는 틀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정 정도 제 역할을 마친 뒤에는 스스로 물러서야 한다. 그럼에도 어두운 구석에 집요하게 들러붙어 몸집을 키우는 것들에 우리는 '암적 존재'라는 딱지를 붙인다. 우리 주변의 암적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