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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

드골 대통령이 재집권한 1957년도부터 권좌에서 물러난 1969년까지 프랑스 정부의 수석부처는 문화부였다. 레지스탕스 핵심요원이자 세계적인 작가인 앙드레 말로(1901~1976)는 문화부 장관으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으면서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설파했던 그는 위대한 프랑스를 지향했던 드골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문화재들을 보수하고 전국 각지에 미술관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문화부 산하의 프랑스 박물관국은 루브르박물관을 위시하여 전국 200여 미술관과 박물관을 관할하고 루브르학교에서는 꽁세바퇴르(학예관)들을 양성한다. 일단 학예관이 되면 프랑스 각지의 크고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독자적인 권한이 부여된다.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국가문화시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책임을 맡기는 것이다. 필자가 파리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자주 갔던 국립도서관에서 직지심경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을 고증하고 유네스코 책의 해 전시회에 출품했던 마리 로즈 세귀이도 학예관이었다. ▶각급 미술관에서 작품을 대여 받아 서울에서 프랑스 명화전을 10여 차례 마련하면서도 많은 학예관을 만났다. 중앙정부에서 한국전시회에 소장 작품을 대여하라는 지시에도 어떤 학예관은 한국 미술관에 보안 시설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대여를 거부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며 문화대국의 면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의 한국방문 때 규장각도서를 반환하겠다는 약속을 백지화시켰던 사람도 국립도서관의 학예관(사서)이었다. 도서관 소장품의 대여도 물론이지만 반환결정은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는 게 학예관의 소신이었다. 당시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한 프랑스 언론들은 문화국가로서 당연한 사실이라고 논평했다.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부부침실에 걸기 위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소장품 반 고흐의 <눈(雪)이 있는 풍경>을 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백악관의 요구에 구겐하임 미술관의 수석 학예관 낸시 스펙터는 반 고흐 작품은 빌려줄 수 없다면서 대신 미술관에 전시했던 18k금으로 만든 변기를 장기간 임대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백악관에서 요청한 반 고흐 대신 황금변기를 제의한 저의도 궁금하지만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한 학예관의 자세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