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절절하다. 빠르기는 산책 수준의 안단테(andante). 3박자 리듬에 노랫말을 담았다. '통일'이란 낱말이 마디마다 촘촘하다. 통일은 꿈에도 그리는 소원이라는 것. 정성을 다해 이루자는 것. 이 겨레 살리는 것이란 메시지다.

곡이 발표된 건 정부 수립 전인 1947년. 당시 '독립'이 노랫말의 핵심이었는데, 1948년 교과서에 실릴 때 '통일'로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 노래는 온 국민 애창곡이 됐다. 필자 역시 초중고 과정에서 수없이 불러댔다. 하나, 다만 부를 뿐 감흥은 없었다. 그나마 생활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뒷전으로 밀렸다. 통일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따져본 적도 없다. 누구도 묻거나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통일의 당위성은 정연하다. 남북 간 긴장 완화, 한반도 평화, 국방비 절감, 시장 확대와 경제 성장, 유라시아 대륙 진출, 이산가족 상봉 등 수두룩하다. 하여, 헌법도 전문과 4조에서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 추진'을 내걸고 있다. 그럼에도 통일은 거룩하고 숭고할 뿐 와 닿지 않는 추상의 영역이다. 그 좋다는 게 70년 세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도 그렇거니와, 남북 간 크게 다른 속사정도 걸림돌이다.
덩달아 통일은 좋은 것이며, 당연히 해야 할 과업이란 명분도 서로 크게 달라지는 남북 간 현실에 부닥쳐 표류하고 있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남북한 단일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발은 그 징표다. 누구나 다 반기리라 했던 예측은 이른바 20~30대의 집단적 이의제기 앞에 무너졌다. 이런 조짐은 지난해 통일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감지됐다. 20대 절반 이상이 통일에 부정적이며, 남북이 한민족이라고 하나의 국가를 이룰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윗세대의 도그마(dogma)에 동의한 젊은이는 고작 13.7%뿐이었다.

남북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런 태도는 윗세대를 향한 질문이자 추궁이다. 70년 세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남북 간 통일론'에 대한 인식전환 요구다.
오랜 세월 묻거나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통일'만을 외쳐온 시절과 세대에 대한 당연한 도발이다. 오랜 세월 상식이라 믿었던 것이 헛것은 아닌지, 바야흐로 윗세대가 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