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만 함께 걸어갈
▲ 홍순영 지음. 시인동네. 120쪽. 9000원


=인천에서 태어나 2011년 '시인동네'로 등단한 홍순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금세 돌아설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주는 안도감은 묘하게 슬프고 아늑하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자서처럼, 이 시집은 함께이거나 함께일 수 없는 이상한 눈금으로부터 태어난 이름 없는 감정들의 향연이다.

그것을 일상 면면에서 발견해 이름을 불러주는 시인의 다정하고 차가운 시간이 52편에 켜켜이 녹아 있다.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해설에서 이 시집을 '두터운 상징의 숲'으로 해석한 것처럼, 일상의 사방에 낯설고 새로운 장치를 설치하고, 새로운 의미의 폭발을 기다리는 것만 같은 시집이다.



●어느 날
▲ 고은 지음. 발견. 260쪽. 1만2000원


=미수(米壽)를 앞둔 노시인의 완숙하고 노련한 시적 상상력을 맛 볼 수 있는 '어느 날'이라는 같은 제목의 시 1~217편을 묶은 시집.

시인의 그동안의 시와 달리 삶에 대한 허무의식과 시에 대한 원숙한 의식을 전경화한 거장의 감동적인 시편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번 시집 <어느 날>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과 부면들에 대한 통찰과 관련되는 비판과 저항정신이 번뜩이지만 통찰이나 비판의 대상이 반민주주의 사회에서 비인간적인 사회, 다지털 자본주의 사회, 배타주의적 편견 사회 등으로 확장되는 점이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이 시집이 장식하는 고은이라는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는 '어느 날'에 만난 '이 세상 구석구석/벅찬 감동'의 기록이다.


●나에게는 천 개의 서랍이 있다
▲ 이은옥 지음. 실천문학사. 128쪽. 8000원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어성전의 봄'으로 등단한 이은옥 시인이 등단한 지 23년만에 68편의 시를 묶어 출간하는 첫 시집.

시집은 1부 초극(超克), '수런거림과 두리번거림 사이에서 조롱을 사다'와 2부 간극(間隙), '광화문에서 수천 개의 떨어지는 달을 줍고, 해가 떴다. 행적에 불과한 한편의 기록'과 3부 장극(牆隙), '틈으로 갈라진 경계마다 기호들이 난립하고 변방에서 개인의 질서를 정립하는 방법을 서설하다'와 4부 세극(細隙), '바람의 틈으로 구름이 난분분하고, 출가를 자극하다' 등 총 4부로 구성됐다.

이 시집의 언어들은 시적 언어뿐 아니라 크게는 시집에 담긴 하나하나의 시들이 저자가 포착하고 오래 간직해 둔 삶의 이미지이며 재구성될 파편들이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