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운명 앞에서, 그는 시를 토했다
한·중·일 연구자 의기투합
▲ 부평역사박물관 엮음, 소명출판, 400쪽, 2만5000원

한센병 앓았던 한하운 시인
삶과 문학 세밀하게 점검해



'나병과 좌익, 이중의 배제를 넘는 생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다시 보는 한하운의 삶과 문학'은 '황토길', '파랑새', '보리피리' 등의 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 한하운을 한·중·일 연구자의 의기투합으로 그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한센인' 한하운의 곁에는 늘 '나병(癩病) 시인'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천형에 맞닥뜨린 시인은, '나병'을 극복해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가슴 뭉클한 시를 이루는 바탕으로 삼았다.

우리 시에서 최초의 하위자 시인으로 회자되기도 하는 한하운은 가혹한 운명 앞에서 피를 토하듯 쏟아낸 시로 해방직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전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하운은 문단의 배제와 견제를 받으며 주류가 되지 못하고 주변인에 머물렀고 여전히 소수 문학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1920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한하운(韓何雲) 시인은 본명이 태영(泰永)으로 1936년 나병 확진을 받은 뒤 1949년 인천 부평에 있는 인천가족공원 골짜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부평과 인연을 맺었다.

그 뒤 자신의 투병 생활과 함께 1950년 나환자 요양소 성계원(成蹊園)을 설립하고 한센병 환자의 자식들을 위해 1952년 현 신명재단의 모태인 신명보육원(新明保育院)을 설립, 운영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1949년 부평을 터전으로 삼은 후 1975년 부평구 십정동에서 눈을 감기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과 한센인 복지사업을 펼쳐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부평 지역에서 시인 한하운의 흔적과 기억은 흐릿하게 남아 있다.

이 책은 시인의 자취를 좇아 한하운의 작품과 인생을 이 책에 오롯이 담고 있다. 또한 국권피탈과 해방, 한국전쟁에 따른 분단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모두 경험한 한하운의 인생을 자기관찰의 심정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 책은 1, 2,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한하운의 첫 시집 '한하운 시초'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과 역사적 의미를 짚어본다. 불치병, 난치병이 허다한 세상에서 완치 가능한 질병의 하나에 불과한 '나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당시 남한사회의 '좌익'이라는 낙인이 결합하여 한하운이 이중의 질곡을 겪게 된 전말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2부는 가장 두드러진 성과로 한하운의 생애를 다시 밝히는 논문들을 묶었다. 이 논문들을 통해 그간 한하운이 재학한 학교로 알려진 일본 세이케이고등학교 학력이 거짓이며 북경대학교 농학원 학력 또한 왜곡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약력의 왜곡이 작가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며 이토록 겹겹으로 포장된 이력을 만들어내야 했던 한하운의 내면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3부에서는 한하운의 작품세계를 세밀하게 점검하는 연구자들의 새로운 시도를 모은 것으로 앞으로 한하운 연구에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