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천사들의 희망 노래에 관객들 갈채도 '크레센도'
▲ 21일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오스트리아 빈 소년 합창단 내한공연'이 열렸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520년의 역사 자랑하는 맑은 음색
찬가·민요 등 다양한 곡 소화하며
공연장 내 1300여명 관중들 '압도'

한국인 단원 배진욱 군 앙코르서
'아리랑' 불러 감동 무대 선사까지


520년 역사를 이어온 천상의 목소리의 소년들이 인천을 감동의 물결로 물들였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 오페라단과 함께 오스트리아 음악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빈 소년 합창단'이 지난 21일 오후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이 다가올수록 회관 로비는 줄을 길게 늘어뜨린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공연장 안 1332석은 설렘으로 가득한 아이들과 그에 못지않게 들뜬 어른들로 가득 찼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귀를 파고드는데 무대는 텅 비어 모두들 의아해 두리번거렸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객석 중간으로 열을 맞춰 들어오는 소년들을 보고는 비로소 관객들은 박수로 맞이했다.

"아령하세요!(안녕하세요)" 브라질 출신 지휘자 루이즈 데 고도이가 서툴게 인사하고 이를 이어받아 한국인 단원인 배진욱(14)군이 "우리는 스페인에서 시작해 독일을 거쳐 프랑스로 가는 유럽 여행을 시작할 거에요"라며 방긋 웃어보였다.

갈색 머리칼의 소년이 작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처연하게 3성부 카논 '오 빛나는 동정녀여'를 부르며 막이 올랐다.

찬가 모음집 <리브레 베르멜>의 첫 번째 곡으로, 고풍스러움이 한껏 묻어 있었다.

분위기를 바꿔 숲 속에 동물들이 뛰노는 풍경이 저절로 그려지는 아드리아노 반키에리의 '사육제 목요일 밤의 향연' 중 '동물들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대위법'은 관객들을 들썩이게 했다. 23명의 소년들이 개와 고양이, 뻐꾸기, 올빼미 소리를 내며 생기 넘치는 무대를 이어갔다.

1부가 무르익어갈 때 쯤 친숙한 외모의 소년이 홀로 나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피아노 반주에 몸을 맡긴 채 노래했다. 한국인 단원 손현서(14)군은 실력 있는 외국 친구들 앞에서 좌중을 압도하며 당당히 목청을 높였고, 객석은 눈을 지그시 감은 이들로 늘어갔다.

수준급 독창이 끝나자 끊이지 않는 박수 세례에 현서 군은 3번이나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게랄드 비어트 '고귀하고 공경하올 마리아께 인사드리나이다'와 '겨울날'로 2부가 시작됐다.

이 두 곡은 게랄드 비어트가 이번 내한 공연을 위해 특별히 재편곡해, 소년들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피아노 선율과 하나가 됐다.

2부는 성가곡 뿐만 아니라 개구쟁이처럼 익살스러운 아르메니아·세르비아 민요와 알프스 노래 등 좀 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곡 등 9곡이 이어졌다. 긴장이 풀린 듯 소년들은 반주에 몸을 맡긴 채 음악과 '혼연일체'가 됐다.

에루이코 카라파토소의 '오 내 아들아'를 부를 땐 날개를 펼치듯 무대를 가득 채워 성량은 폭발했고, 슈만의 '예배당'이 흘러나올 땐 무반주임에도 목소리로만 끌고가는 그들의 호흡이 두드러졌다.

특히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의 소몰이 노래인 '그리고 다시 눈이 녹기 시작할 때'는 공연장의 모든 이들이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중간 중간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흐트러짐 없이 곡을 끝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준비한 공연이 모두 끝나고 지휘자와 소년들은 고맙다며 또 보자는 듯 거듭 인사했다. 조심스럽게 객석에선 '앙코르'를 외쳤고, 루이즈 데 고도이는 피아노로 달려가 한음 한음 건반을 꾹꾹 눌렀다.

진욱 군이 소년들 틈을 비집고 나와 한국 대표 민요 '아리랑'으로 무대를 다시 열었다. 그 어떤 화려하고 유명한 외국 곡보다 소박하면서도 우리 정서가 담긴 아리랑이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반갑지만 진중하게 감상했다.

피부색도, 머리카락 색도, 눈동자 색도 모두 다른 23명의 소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선을 나누고, 호흡과 입을 맞추며 하모니를 이룬 평화가 맴도는 이번 공연은 비록 90분이지만 단연 빈 소년 합창단의 위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