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반점 길림성에서 작품 한그릇 하세요"
중국집 흔적 고스란히 남은 오래된 건물
1년후 철거 앞두고 문화공간으로 새단장
▲ 철거를 앞둔 길림성 건물 전경.
▲ 길림성 프로젝트를 통해 마련된 공간에 전시된 조성정 작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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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범(왼쪽) 문화기획자와 조성정 작가.

 


큰 차가 쌩쌩 달리는 인천 서구 가재울사거리 길가엔 불혹을 훌쩍 넘긴 허름한 건물이 있다. 높지도 크지도 않은 작은 건물은 여러 명의 주인이 중국집으로 운영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도 눈에 확 띄는 주황빛 간판은 뚝심 있게 40여년을 한 자리에서 버텨온 세월을 여실히 보여준다. 쓸쓸히 방치됐던 이 건물 2층에서 얼마 전부터 시끌벅적 사람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맘껏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하기 위해 춘장과 기름 냄새를 날려버리고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예술반점 길림성'이 지난 18일 문을 열었다.


독립출판물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로 지역의 '숨은 진주'같은 카페들을 소개해 이름을 알린 이종범 문화기획자가 또 한 번 '길림성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들을 만난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1년 후 철거될 예정이지만, 이 문화기획자는 건물주와의 논의 끝에 철거 전까지 건물 사용을 허락받아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게 됐다. 이 문화기획자는 "행운처럼 발견한 '길림성'이라는 날 것의 공간이, 예술가들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지역에서 무언가 판을 벌일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지난 12월29일부터 텀블벅을 통해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21일 기준 75명이 210만7000원을 후원해 줘 성공할 수 있었다.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갈증이 후원으로 빛을 발해 250만원을 목표로, 84%가 달성된 셈이다. 250만원을 목표금으로 하며 누구나 오는 25일까지 이 프로젝트를 응원할 수 있다.

이 문화기획자는 본래 중국집이었던 점에 착안해 후원 방식과 공간 콘셉트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단순 후원이 아닌 엽서와 스티커, 이쑤시개 도록함, 금박포스터 등 작가의 소품을 조합해 '쟁반짜장 세트', '찹쌀탕수육 세트', '전가복 세트' 등으로 재밌게 구성했다.

예술반점 길림성은 지난 18일 작가 조성정의 첫 개인전 '조성정 기하학 : 미지근한 추상'으로 정식 문을 열었다. 다음달 8일까지 기하학을 소재로 그동안 그려온 작품들을 멋스럽게 전시하는 한편 직접 만든 소품 등도 판매할 예정이다. 또 작가와의 대화나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시간도 마련된다.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를 소개하기 위한 공간의 취지와도 딱 맞는 조 작가는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하고 계양구에서 '우주삼각형 그림연구소'를 운영하며 미디어아트, 일러스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JTBC 단편영화제작 예능 '전체관람가'에 콘티작가로서 고정패널로 출연한 바 있다.
이곳은 전시를 기본으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열린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예정이다. 플리마켓, 강연장, 공연장, 파티 공간은 물론 날이 풀리면 숨겨진 '핫스팟'인 옥상도 마음껏 쓸 수 있다.

길림성은 서구 장고개로 245 2층에 위치해있으며, 운영 시간은 오후 12시30분부터 8시까지고, 토·일요일은 오후 1시부터 문을 연다.


[이종범 문화기획자] "인천, 괜찮은 곳 많아 … 예술가들 놀이터되길"

'길림성 프로젝트'를 준비한 이종범(26) 문화기획자는 늘 그렇듯 인천에 애정을 듬뿍 쏟고 있다.
많고 많은 지역 중 서구, 그것도 하필 가좌동 공장지대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그는 "지역의 스토리"라고 짧고 굵게 답했다.
이 문화기획자는 책 <서울보다 가깝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을 쓰면서 이곳 일대가 과거 '신진말'이라는 포구마을이었던 것을 알게 됐다.
400년 동안 청송 심씨 일가가 대대로 살면서 일궈왔고 특히 애착이 컸던 심기보씨는 낙후된 동네라는 인식을 바꾸고 이웃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픈 마음에 품질이 좋은 음식점을 열고 카페를 입주시키기도 했다.
그는 "심씨 일가의 마음이 듬뿍 담긴 지역의 맥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며 "길림성 프로젝트로 인해 유휴상가와 공장단지들이 조금씩 예술 공간으로 변해가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미술을 전공해 다른 분야보다 조금 친숙하다는 그이기에 전시 공간으로 계획했다. 인천아트플랫폼 등 훌륭한 전시장이 있지만 관에서 진행하는 전시와는 사뭇 다른, 좀 더 자유분방하면서도 더 많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그다.
"300만명이나 사는 인천에 얼마나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있겠어요. 자기가 하고자하는 작업과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드리고자 한거죠."
이 문화기획자는 이곳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쯤 길림성 근처 꽤 큰 규모의 폐공장을 문화복합공간으로 탈바꿈 해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개관전이 끝나면 공간을 재정비한 뒤 '길림성 대관권'을 구입한 작가들의 전시가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이라며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더 많은 작가들이 장르에 제한 없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놀이터로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