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사회부장
돌아보면 환경 변화가 우리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 1970년대에 태어난 기자만 해도 어린시절 물을 사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그저 농담처럼 흘려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수돗물이 아쉬움 없이 나오고 있는 요즘이지만, 대형마트 장보기에서 기자 역시 가장 먼저 집어 올리는 것이 생수 묶음이다. 아주 당연한 순서가 됐다.
1994년 국내에서 생수 시판이 공식화한 이후 생수 시장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의 유명 브랜드들을 가까운 마트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여전히 국내 대기업과 해외 업체들이 앞다퉈 매년 새로운 생수를 출시한다. 가격이 높은 프리미엄 생수도 여러 가지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5년 2240억원이었던 생수 시장은 2016년 7800억원을 기록했다. 게다가 2020년에는 무려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생수 시장이 확대되는 이유는 뻔하다. 환경오염이 날로 심해지면서 더 건강한 물을 먹으려는 시민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의 미추홀 참물, 서울의 아리수 등 각 지자체가 선보이는 수돗물이 생수만큼이나 안전하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수를 찾는다.
최근 언제 끝나게 될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되는 미세먼지 역시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생명 연장의 기본은 숨쉬기다. 중국 발 미세먼지와 황사, 국내 요인까지 겹친 미세먼지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마치 안개가 내린 듯 하루종일 뿌연 하늘은 무수한 지구인 중 한 명인 기자에게 삶의 방식을 반성하게 만든다. 관련 시장에서는 미세먼지 마스크와 목걸이 등 다양한 형태의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출시하며 또 다른 생수 신화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미세먼지 논의는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권리를 벗어난 정치권 논쟁에 정체돼 있다. 정부의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 발령 이후 서울과 인천·경기 간 대중교통 무료 공방이 미세먼지의 뜨거운 주제로 됐다. 연일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진입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
서울시가 진행중인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 이용을 둘러싸고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계속된다. 반면 정부는 이를 팔짱을 낀 채 쳐다보고만 있는 모양새다.
대중교통 이용이 국내 미세먼지 발생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완벽한 대책은 아니다. 지자체 간 공방을 뒤로하더라도, 정부가 미세먼지 절감을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하루 이틀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는 혜택보다 남녀노소 누구나 건강한 숨을 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지난 18일 정부는 미세먼지 관리종합대책 TF회의를 열었다. 2022년까지 국내 감축 30%를 목표로 국내 발전, 산업, 수송 등을 관리하기로 했다는 게 사실상 전부다.
미세먼지의 경우 국내 요인보다 중국 발 요인이 더 크다. 또 당일 날씨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로또식' 현 날씨 예보 상황을 고려할 때, 제대로 된 정부의 미세먼지 예보 및 수치 발표 역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세먼지 저감대책은 저출산 대책의 판박이 같다. 돈을 쏟아붓는 것 같긴 하지만, 시민들이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세먼지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이렇게 돈과 함께 시간만 흘러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중국이 높이 100m 규모의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본격 가동했다는 한 외신 보도는 웃을 수만 없게 한다.
미세먼지 공습은 향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얽히게 만들 게 뻔하다. 놀이터에서 사라진 어린이들, 운동장이 사라진 학교, 장바구니를 들고 찾아가는 전통시장 노점 상 등 하나둘이 아니다. 혹자들은 말한다. 미세먼지로 대한민국을 떠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에 밝힌, 더 나은 평범한 삶은 연초부터 무너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만화 '미래소년 코난'이 유독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 이유지만 파멸한 지구에서 다시 일어서는 코난. 지금 우리에게는 오염된 지구를 살리기 위해 모두 코난이 돼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