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수원에서 13일 구순잔치를 열었다.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난 안 할머니는 14살이던 1941년 서울 마포구 복사골에서 일본군들에게 연행됐다. 여성들만 나오라는 동네방송을 듣고 영문도 모른 채 나왔다가 트럭에 짐짝처럼 실린 그이는 이역만리 떨어진 내몽고 지역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악몽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광복 이듬해까지 고통을 받은 그이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평생 홀몸으로 지내왔다. 일본군 위안부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가는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에선 매일 수백명의 군인들을 받아야 하는, 말 그대로 '생지옥'을 잘 묘사한다. 입이 헐어 음식을 못 씹게 되자 다른 소녀가 입으로 씹어준 음식을 받아먹는 장면, 일본군이 강제로 입에 넣어주는 낙태약을 먹고, 피임도구를 빨고 소독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영화일 뿐 실제 상황은 더 악랄하고 고통스러웠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이던 지난 2015년 한국과 일본의 외교부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일본정부가 10억엔(한화 약 10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는 것이었는데, 이 합의안은 그러나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 의견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강한 반발을 사왔다. 지금도 '무효'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안 할머니처럼 꽃다운 소녀들이 제국전쟁의 희생양으로 일생을 고통과 한으로 살아온 시간을 돈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제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33인에 불과하다. 이 할머니들 역시 연로한 상태여서 한을 품은 채 그대로 눈을 감을 수도 있다. 피해 할머니들은 물론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여전히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일본이 지금 정식 군대를 갖기 위해 헌법개정을 추진하기에 앞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또 한국정부에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먼저 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 한·일 양국이 미래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