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철 율목도서관 사서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독서에 관한 인터뷰를 받았다. 아빠가 사서라 특별한 독서지도법을 갖고 있을 거라는 기대가 한 몫을 한 것 같다. 사실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그래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 종종 아이의 독서록을 훑어보면 듬성듬성 기록 없이 비어 있는 데가 많다. 그럼에도 유치원 선생님이 인터뷰를 요청하신 것을 토대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책 읽는 아이로 키우는 3가지 사례를 전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아이들을 들판에 뛰어 노는 양처럼 내버려 두는 교육법이다. 그렇게 하면 이웃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하지만 어른도 아닌 아이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깨우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른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이 연간 8.7권이다. 성인도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어린 아이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왜 어른들은 책을 읽지 못할까?. 어렸을 적 나 역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면 누군가 꼭 질문을 던진다. '뭘 느꼈니?' '책을 읽고 너는 어떤 생각을 했어?' 그저 책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 부모님과 선생님은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았냐며 질문을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이 책에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느끼지도 못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내가 책과 친해지지 못한 이유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난 뒤 책을 제자리에 꽂아 두라는 말을 할 뿐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질문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도서전집을 절대로 통째로 구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은 가끔 아빠랑 뷔페 가는 날은 맘이 설렌다. '맛난 거 많이 먹고 본전도 뽑고 와야지!' 그런데 실제로 뷔페에 가면 젓가락이 가는 곳은 몇 없다.
몇 십권 이상으로 구성된 전집은 뷔페와 같다. 대량의 책이 한 번에 들어오는 것이니 당분간 책을 사지 않아도 될 듯 하고 한 편으로는 이 비싼 책을 사주었다는 데 대해 아이들의 독서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전집을 100% 읽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뷔페처럼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책은 몇몇 권에 불과하다. 읽지 않고 그대로 남겨진 책들은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숙제로 다가오며, 때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단초일 수 있다.

사실 우리 집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6개월 전 위인전집을 구입하긴 했으나 역시나 '이순신', '유관순', '한석봉' 등 몇 권의 책만 표지가 닳도록 읽을 뿐 나머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도 이제 우리 집은 정말로 전집을 구입하지 않을 것 같다.
세 번째는 베스트셀러에 연연하지 않고 아이가 선택하는 책만 사주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우리 집은 과자파티를 한다. 마트에 데려가 과자를 고르라고 하면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아이들도 이제 '불금'을 즐길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과자를 선택하기 전까지 아이들은 참으로 행복해 한다. 이걸 잡았다가 내려놓고 저걸 잡았다가 내려놓고 끝내 한 가지를 선택한 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세상 처음 먹어 보는 표정을 지으며 좋아한다. 아마도 자기가 고른 과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책을 선택하게 하는 기쁨을 선물해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쌀 과자보다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과자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그림이 많고 글밥은 적은 것을 선택해 부모 마음을 답답하게 하기도 하지만. 베스트셀러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아이가 고른 책의 값만 치러주면 책 읽으라고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읽는 경험을 자주 하였다. 하지만 '필독도서, 권장도서보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베스트야'라고 맘을 다잡아 보아도 부모의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 건 학교가기 전에 읽어야 한다는데' 하는 마음이 너무 클 때는 아이가 고른 책 더미에 그 책을 한 권 몰래 넣는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읽어 준다. 재미가 없을 수 없게 만든 뒤 물어본다. "아빠가 고른 책 어때?" 아이는 이제 아빠가 고른 책은 재미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다.

이제 우리 집 이야기를 정리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엄마 아빠들은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하는 데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집은 하루에 몇 권씩 읽어준다. 부부가 서로 바쁘니 그렇지도 못하고 왠지 아이들에게 못 해주는 것만 같아 죄책감까지 갖는다. 이해를 못하지는 않지만 언제까지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줄 수 없는 것처럼 언제까지 부모가 옆에 앉혀두고 책을 읽어줄 수는 없지 않는가. 언젠가 아이들은 부모에게 '독서독립'을 한다.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한다고 절대로 죄책감 혹은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자. 부모의 역할은 아이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