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실내악단 바람에 13년 버텼는데 …"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 멘델스존 등 격조 높은 클래식을 즐기려면 웅장한 예술회관이나 수 백 석이 마련된 대공연장에 가야만 한다는 부담감은 누구든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편견을 한 방에 무너뜨린 곳이 있다. 바로 동인천역 앞 '콘서트하우스 현'이다.

다른 공연장처럼 넓진 않지만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이기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지역의 대표적인 실내악단 'i-신포니에타'의 공연은 물론 수많은 작가들이 북콘서트로 다녀간 이 곳. 많은 관객들과 작가, 아티스트들이 다녀가며 쌓아온 인천 문화의 축소판인 이 소중한 공간이 경제적 난항으로 곧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조화현(48) 콘서트하우스 현 대표이자 i-신포니에타 단장은 담담하면서도 착잡한 심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나갔다.

"내 고향 인천에도 제대로 된 실내악단이 있었으면 했어요. 우여곡절을 겪으며 13년을 버텨왔네요."
마냥 음악을 좋아하던 소녀는 짧은 손가락으로 열심히 건반을 눌렀고 바이올린을 켰다. 유난히도 몸이 약해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연습해 결국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 비해 공연장과 오케스트라 모든 게 부족해 '우물 안 개구리'던 인천 청년은 후배들과 함께 옥련동 8평 남짓한 자신의 연습실에서 '인천의 현악 앙상블을 만들어보자'며 호기롭게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2004년 4월 8인조 '에이프릴 현악 앙상블'이 태어나게 된다. 연수구청에서 창단연주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다, 다음해 작은 실내악단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신포니에타'에 인천의 'i'를 붙여 'i-신포니에타'로 재탄생했다.
i-신포니에타는 2006년 인천시립박물관과 공동 기획한 '박물관으로 떠나는 음악여행'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옳다구나!" 조 단장은 박물관이 재개관하면서 250석의 석남홀이 생긴다는 소식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우리 악단이 결성된 것도 인천 시민들을 위해 클래식을 알리자는 취지였는데, 마침 시립박물관에서 공연을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열과 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중고피아노부터 보면대, 의자까지 직접 마련해 무대를 채우니 일요일 공연 마다 객석은 관객들이 절로 채워줘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이 됐다.

그러던 2007년 말, 박물관과의 소통 문제로 i-신포니에타는 석남홀에서 영영 나오게 됐고, 조 단장이 기획했던 야외 공연 '오감만족' 역시 다른 팀이 꿰차게 됐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생생 문화예술교육과 클래식 공연'도 2년여간 진행하다 애석하게도 지원금 문제로 그만두게 됐다. 조 단장은 "지금에서야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만 해도 눈물을 머금고 여기저기 알아보며 공연하러 다녔다"며 "나름 인천에서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어 놓은 기획들을 뺏기는 기분이 들어 굉장히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조 단장은 2014년 결국 i-신포니에타 전용 공간이자 지역 내 복합문화공간 '콘서트하우스 현'의 문을 열었고, 정기 공연과 북콘서트, 청소년 토크콘서트 등 양질의 행사를 기획하며 새로운 문화바람을 일으켰다.

그런 것도 잠시, 3년차를 맞은 지금 콘서트하우스 현은 또 다시 큰 산 앞에 놓였다. 아니 어쩌면 조 단장이 내려놓기로 했다. "사실 임대기간은 내년까지 인데 도저히 운영할 수가 없어서 내놓았다. 소극장 지원 사업을 이달까지 받게 됐지만 그동안 직원 한두 명 급여 줄 여건도 안돼 아프고 속상하지만…." 한때는 직원 3명을 둘 정도였지만, 공모사업도 다 떨어지고 지원도 끊겨 조 단장의 주머닛돈을 털어 단원들을 챙겨 무대에 올리고 직접 공연장을 관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그가 나가서 공연을 하거나 기획을 해 돈을 벌어와 이곳에 쏟아 부어야 하는데, 공간을 돌볼 인원조차 없으니 아픈 결단을 내린 것. 지난 2일 송년음악회는 올해의 마지막 혹은 콘서트하우스 현에서의 아듀 공연이 됐고, 13일 인재개발원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계획된 모든 2017년 공연은 끝이 난다. 조 단장은 "부동산에 내놨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며 "명맥을 이어 공연 공간으로 계속 쓰이길 바라는 터라 이왕이면 전시나 공연하는 분을 만났으면 한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그의 고향 인천에서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섰지만 정작 타지에서 더욱더 진가를 인정받는 조 단장. 3년 전부터 순천아고라페스티벌에서 심사를 맡던 그는 축제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던지는 한편, 전국 곳곳에서 모인 문화예술가들과 인천에서의 어려운 처지를 나누다보니 순천만국제교향악축제 예술 감독을 맡아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인천에서 3월에 냈던 공모사업 마저 떨어져 '정말 인천을 떠나야하나' 싶었을 무렵, 순천에서 어마어마한 제의를 받아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더라고요." 3개월 간 순천지역을 공부하고 두 발로 뛰며 공연장을 누비던 노력이 빛을 발해 지난 9월 열린 순천만축제는 성황리에 마쳤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여세를 몰아 내년 순천만축제도 캡틴을 맡게 됐다.

"사실 속상하죠. 제 뿌리는 인천이고 어떻게든 인천에서 더 날개 펴고 싶으니까요."

시인 문정희, 안도현, 장종권, 김윤환부터 작가 정승재, 윤보영, 박상윤 등 30명이 넘는 문학가들을 초청해 북콘서트를 진행하면서 그는 저서를 모두 읽고 그들의 생애를 공부한 뒤 마이크를 잡았다. 이밖에도 토크콘서트, 음악방송 등의 사회를 도맡으며 만능 문화인으로 기반을 넓혔다. 그는 "아무리 지역에서 열심히 해도 찬밥 신세 같더라"며 "한때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하는 허탈감에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에겐 i-신포니에타를 사랑하고 '콘서트하우스 현'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작가들이 있다. 조 단장은 "인천시민은 물론 서울, 지방에서 온 분들이 '인천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며 놀라신다"며 "당장 다가올 내년이 두렵지만 이곳에서의 공연을 그리워 하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조 단장은 커피를 참 좋아한다고 했다. 당신이 겪었던 우여곡절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으면서 두 잔의 커피를 비워냈다. '매의 눈'으로 공연장의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전구를 갈고 전기콘센트를 정리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실내가 좀 춥진 않나요? 마지막 공연날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안될 텐데 …." '콘서트하우스 현'에서 내일도, 내년에도 조 단장의 화려한 입담과 센스 있는 무대를 볼 수 있을지 시민들이 더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