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선 인천시도서관발전진흥원 율목도서관 사서
평화(平和)라는 한자를 하나씩 풀어보면 곡식(禾)을 사람 입(口)에 골고루 나눈다(平)는 의미가 들어 있다. 가난으로 잘 먹지 못하던 시절에는 모두 골고루 잘 먹을 수 있는 환경이 평화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없어 불행했던 시절과는 다르다. 곡식의 자리에 교육이 자리해야 할 시기이다.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고, 집 근처에는 몇 블록만 지나면 도서관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보접근에 소외된 아이들이 있다. 우리 아이에게 평화는 고른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게 아닐까? 빈부의 격차로 인해 고른 교육의 기회가 돌아가지 못하는, 소위 말해 출발점이 다른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자본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세상에서 아이들마저 자본의 힘에 짓눌리지 않도록, 가난의 대물림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나타나는 정보 격차(Digtal divide)를 줄이기 위해 도서관이 나서야 한다. 인천 율목도서관에서는 지역 특성과 환경을 고려하여 소외계층 지원 사업에 주목했다. 우선 유관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지원기관을 확보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2017년에는 3개 지역아동센터에 독서활동을 지원하여 많은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가정 형편상 도서관이 있어도 찾아오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직접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갔다. 여기서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책과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안정적인 독서습관 형성을 위해 힘썼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생색내기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정기적 독서프로그램 운영 지원을 통해 정보격차 해소를 도모했다.
사업 초반에는 정말 어떻게 활동을 이끌어나가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그 정도로 도서관을 찾아오는 아이들과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달랐다. 아이들이 책읽기를 듣지 않으려 하고, 끼리끼리 모여 놀려고만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땐 웃지 않고 화내지 않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그런 행동이 잘못된 행동임을 알려주었다. 책 읽기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책 읽기를 멈추더라도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보이는 나쁜 행동들은 무심코 내가 외면했던 작은 습관이 커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책의 경우 스마트폰과 TV에 비해 자극 강도가 약하다. 이미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과 친숙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책 읽기 수업을 진행해 보니 계획서에 아이들의 흥미가 떨어지는 책이 다수 선정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사를 파악해 과감하게 계획을 변경해 진행하였더니 책 읽기에 시큰둥하던 아이들도 차츰 흥미를 보이는 게 느껴졌다. 수업활동 차수가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아이들이 책과 점점 더 친숙해지는 변화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아이들의 변화를 통해 책 읽기의 힘을 알 수 있었다. 책 읽기 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활동이 지속될수록 먼저 책상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오늘은 무슨 책 읽어주실 거예요?"라고 물을 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책 찾는 법도 모르던 아이들이 율목도서관 견학을 통해 책을 어떻게 찾는지 알게 되고, 도서관과 담을 쌓고 지내던 아이들이 도서관에 빼꼼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엄청난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이 더 컸다. 역시 책 읽기의 힘은 이토록 강력했다. 아이들은 책 읽기로 달라졌다.
누구에게는 당연하고 쉬운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렵고 힘든 것일 수 있다. 율목도서관에 부모님과 함께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는 쉬운 책 읽기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겐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율목도서관과 연계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책 읽기가 즐겁고 쉬운 일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아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교육만큼은 모두 평등하고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도서관 사서들은 오늘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또 행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