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을 타고 들어간 칼이 가마 안에서 4시간 동안 1010℃ 화염을 견디는 거예요. 1010℃의 열기가 어느 정도 뜨거운 것인지 짐작할 수 있으세요? 1010℃ 6m 길이의 화염을 견디고 나면 4m 구간 동안 다시 급랭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가마를 통과하고 나면 칼은 세 배는 단단해졌죠.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칼이 휘어지거나 변형이 없는지 살피고 곱게 펴준 칼을 잘 모아서 다시 액체질소를 부어 영하 196℃로 30분 동안 완전 급랭을 시키는 거죠. 그런 다음 롤러에 천연접착제를 바르고 그 위에 금강석가루 묻혀 두 시간 정도 말린 다음 칼을 매끈하고 날렵하게 가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칼이 되죠. -양진채 단편소설 <베이비 오일>중에서
주말, 배달되어온 <굿모닝 인천>을 보았다, <굿모닝 인천>은 꼬박 챙겨 보는 편이다. 인천의 문화 흐름을 볼 수 있다고 할까. 특집이며 그날의 공연소식, 마지막 <몽(夢)땅 인천 골목>까지 읽고 나면 뭔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번호는 더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 특집이 <백범일지 7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회숙 선생과 인천감리서부터 화개동마루턱까지 1900년대 지도를 들고 김구 선생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선 글은 새롭고 신선했다. 얼마 전 영화 <대장 김창수>가 개봉되면서 인천과 김구 선생의 삶이 다시 한 번 조명받기도 했다. 김구 선생의 삶은 감옥 수형 생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인천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인천 개항장을 통해 유입된 신문물을 익히며 항일운동가로서의 사상을 정립했다.'고 백범일지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인천은 김창수라는 개인이, '백범 김구'라는 이름의 존경받는 공인으로 태어나게 된 발판이 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안타깝게도 수형생활이라는 고난을 통해서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고난이 없었다면 '백범 김구'가 있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생각한다. 문제를 직시하고 고통을 견뎌야한다. 한 조각 쇠가 뜨거운 열과 급랭의 시간을 거쳐야 날카롭게 벼려지는 칼이 되는 것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