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수원역 로데오 광장에 다시 촛불이 밝혀졌다. 3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생애 첫 노동현장에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달 9일 제주시의 한 음료공장에서 일하던 중 제품적재기에 목이 끼어 숨진 고 이민호군을 추모하는 집회였다.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실습생 신분이었던 이 군은 기계 하나를 혼자 맡아 하루 12시간이 넘게 노동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지난 1월 전주에서 실습시간을 채우기 위해 콜센터에서 일하던 홍모양이 '콜 수를 다 채우지 못했다'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16일에는 안산의 한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박모군이 4층에서 뛰어내려 다리와 머리 등을 크게 다쳤다.

어린 고교 실습생들에게 근로기준법은 무용지물이었다. 교육부가 지난해 조사한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점검 결과는 이런 사실을 입증한다.

표준협약 미체결 238건, 근무시간 초과 95건, 유해위험업무 43건, 부당대우 45건, 임금미지급 27건, 성희롱 17건 등이었다. 교육부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허언이었다.

일부에서는 사고의 일차적 원인으로 성과제일주의를 꼽기도 한다. 일부 교육청에서 취업률에 따라 교장들의 성과급을 차등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실습시간을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고, 학교는 학생들의 일자리의 질을 따지지 않고 현장실습을 하도록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과한 주장 같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는 1970년대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적어도 노동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인식은 그대로다. 1970년 11월, 전태일이 분신하며 외쳤던 말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것이었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극히 일부 계층에게만 이런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화된 불평등의 가혹한 대가다.

이날 집회에서 터져 나온 요구와 주장은 별 것도 아니다.

학생 선택형 현장실습제 시행, 3학년 2학기 사회진출학기제 도입, 현장실습 전담기구 신설, 청소년노동보호법 제정, 현장실습 전수 실태조사 실시 등이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