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 같으면 한없이 올라가는 공원의 층계에 엎드려 층계를 올라가는 양갈보들의 치마 밑을 들여다보며, 고래 힘줄로 심을 넣어 바구니처럼 둥글게 부풀린 패티코우트 속의 온통 맨다리뿐이라는데 탄성을 지르거나 혹은 풀섶에 질펀히 앉아서 <도라아 보는 발거름마다 눈무울 젖은 내애 처엉춘, 한마아는 과거사를 도리켜 보올 때에 아아 산타마리아아의 종이이 우울리인다> 따위 늙은 창부 타령을 찢어지게 불러 대었을 텐데 우리는 묵묵히 하늘 끝까지라도 이어질 것 같은 층계를 하나씩 올라갔다. -오정희 소설 <중국인 거리>중에서


지난 토요일, 자유공원에 올랐다. 청명한 하늘은 높았고, 햇볕은 따뜻했다. 간간히 시원한 바람도 불었다. 제물포구락부에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은 멀리서만 탑을 보고, 산책길로만 다녔는데 오랜만에 기념탑을 보러 들어간 것이다. 그 자리가 한때 인천의 랜드마크로 이름 높았던 인천각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건축물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니 탑이나 조형물을 가지고 뭐라 평가하긴 그렇지만, 공원 한 가운데에 찌를 듯 날카롭고 높게 세워진 삼각형의 조형탑은 청명한 하늘을 갈라놓는, 주위의 오래된 나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공원 꼭대기인데 사방이 탑으로 가려져 어디든 보이질 않았다.

역사적으로 잊지 않아야 할 사건을 기억하는 방법이 꼭 이렇게 커다란 조형물이나 탑, 동상 등을 세워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주위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건축물이나 조형물은 더욱이나 그렇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처럼의 가을 정취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른 공원과 달리 자유공원은 그 공원이 지닌 역사성이 있기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유공원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방법은 자유공원을 공원 그 자체의 아름다운 녹지공간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뚝딱 세우고, 역사 운운하지 말고, 오래된 풍경을 보듯, 어머니의 품 같은 공간으로 자유공원이 존재할 수는 없는 건가. 청명한 하늘처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