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붐비는 곳에 가면 펼침막 밑에서 선전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외치면서 행인들에게 서명을 부탁하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이 무얼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나 위안부 합의 무효 등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사드 배치 반대,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초미의 현안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 여름 땡볕이나 혹한의 겨울에도 변함없이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자리를 지킨다. 누가 불러서 나온 게 아니고 직업도 제각각이다. 당연히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그저 '민주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에, 스스로 나와 고생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에서 펼쳐지고 있는 거리 홍보전 현장 몇 곳을 찾아가 그들의 활동과 주장을 살펴본다.

▲ 매주 토요일 오후 진행되는 동암역 앞 서명운동 현장에는 '장준하 선생'의 생전 모습이 인쇄된 대형 펼침막과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선전판이 전시되고 있다.

● 동암역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 촉구 서명운동(토요일)

인천에서 가두 홍보전이 진행되는 대표적인 장소는 부평구 동암역 앞이다. 이 곳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의 홍보, 선전전이 진행된다.

월요일 저녁에는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 등이 펼쳐진다. 토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해질 녘까지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이 이어진다. 동암역 앞에서 가두홍보전이 시작된 것은 9년 전인 지난 2008년이다.

강건일 행동하는시민모임 대표가 이곳에서 안티 이명박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발생한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MB 반대운동의 기치를 든 것이다. 이후 보수정권 9년 동안 대형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홍보전 대상이 하나둘씩 늘어 갔다.

그때마다 참가자들은 인천 전역으로 홍보장소를 넓혀갔다.

하지만 강 대표는 동암역을 계속 지켰다. 2012년부터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 촉구 서명전을 진행했다.

강 대표는 장준하 선생이 인쇄된 대형 현수막을 역 광장에 펼쳐놓고 있다.

지난 2012년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 서울 창립식 때 사용된 것을 이 곳에 옮겨 놓은 것이다.

그 옆에는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선전판 수십 개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동암역 앞에서는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에 서명해 줄 것을 호소하는 가두 홍보전이 펼쳐졌다.

● 동암역 국회의원 소환제 홍보전(월요일)

매주 월요일 저녁7시부터 진행되는 동암역 홍보전에는 다양한 구호들이 등장한다.
광우병 파동, 국정교과서, 국정원 댓글사건 등 주요 사건이 모두 이 곳을 거쳐 갔다. 최근에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함께 사드 반대, 국회의원 소환제가 가장 큰 이슈다.
참가자들도 다양하다.

정치인, 교사, 변호사,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등 직업이나 나이의 구분이 없다. 이들은 SNS나 지인들의 전언을 듣고 자발적으로 현장에 나와 홍보전에 참가하고 있다.

▲ 계양구 주민들이 매주 화요일 임학역 출구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계양구 임학역 세월호 서명운동(화요일)

화요일 오후 7시부터는 계양구 임학역 출구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서명전이 진행된다.
이 곳 서명전은 2014년 10월 계양역에서 처음 출발했다.

참사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지역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목소리가 나왔다.
계양에 거주하는 학부모와 학교 운영위원이 먼저 행동에 나섰다.

광화문 촛불집회 때 가까워 진 지역 주민들도 동참해 지난 8월까지 역 앞에서 서명전을 이어갔다.
2개월 전 임학역으로 자리를 옮긴 뒤 위안부 합의 무효를 서명목록에 추가했다.

▲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 구월동 로데오거리 서명운동은 '전쟁반대와 평화협정 체결 촉구'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다.

● 구월동 평화협정체결 서명운동(수요일)

매주 수요일 오후 7시에는 사드 반대, 평화협정체결촉구 서명운동이 펼쳐진다.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 맞은 편 로데오거리 중앙광장에서다.

평화협정운동인천본부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주 대상이다.
인천본부는 "전쟁 없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길은 평화협정"이라고 주장한다.

한반도와 세계가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닥치고 평화협정!'이라고 외친다.
서명 운동 중간에 평화콘서트도 함께 진행되며, 매달 마지막 주는 운영위 회의로 대체된다.

▲ 매주 목요일 부평역 구내에서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사드반대 서명운동이 펼쳐진다. /사진제공=부평역 서명팀

● 부평역 사드반대, 세월호 서명운동(목요일)

부평역 구내에서 매주 목요일 펼쳐지는 서명운동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곳에서 서명전이 시작된 것은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 뒤인 2014년 5월이다.당시 시민활동가를 중심으로 역 구내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됐다.

몇 달 뒤 송영길 전 인천시장의 부인 남영신 여사가 여기에 합류했다.
이후 3년이 넘도록 매주 목요일이면 빠짐없이 이 곳에 나와 서명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돗자리에 모여 앉은 자원봉사자들이 세월호 리본을 직접 만들어 나눠주기도 한다.
몇 달 전부터는 송경평 인천시민합창단 단장이 리본제작을 함께 하고 있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