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자·소외층 '문해교육' 한길...세계평생교육 명예의전당 '헌액'
▲ 수원제일평생학교(팔달구 매교동) 교실에서 박영도(맨아랫줄 오른쪽 두번째) 교장과 늦깎이 학생들이 활짝 웃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30년전 '야학'은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어려운 환경에서 배움의 기회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일평생을 쏟은 야학 교사가 있다. 그 주인공이 박영도(59) 수원제일평생학교 교장이다.

그가 전세계 평생교육분야에서 크게 공헌한 공로로 유네스코에서 주관한 '세계평생교육 명예의 전당(IACEHOF·International Adult Continuing Education, Hall of Fame)'에 헌액(獻額)된다. 국내에서 세계평생교육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사는 문용린 前 교육부장관(2007년), 김신일 前 교육부총리(2008년), 최운실 아주대학교 교수(2010년), 황종건 前 명지대학교 교수(2013년) 등 4명이다. 오는 26일 박 교장과 정지웅 서울대명예교수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 총 6명으로 늘어난다. 이번 박 교장의 세계평생교육명예의 전당 헌액은 최초의 현장교육가라는 점에서 평생교육계에 기념비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박 교장은 지난 달 28일 그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감개무량하다. 유네스코 평생학습위원회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고 들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교장은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자랐다. 넉넉치 못한 농촌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인근 대도시인 대구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박 교장은 1983년 군 제대 후 대학 복학을 준비하던 중 야학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 본격적인 야학 활동의 시작이다. 대학원 진학 후에도 4년 간 소외계층을 위한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박 교장은 "야학을 의도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내인생에 운명처럼 다가왔다. 삶의 가치관과 엮여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소회했다.

박 교장은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 취직하면서 야학 활동을 접었다. 그것도 잠시, 1988년 박 교장은 다시 야학과 운명처럼 인연을 맺는다. 당시 동료 연구원이 박 교장을 서울 YMCA 부설로 있던 야학에 자신의 후임자로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야학 활동을 다시 시작한 박 교장은 5년 간 매일 오산에서 용산을 오고 가는 첫차와 막차 통근열차를 타고, 야학 활동을 이어갔다. 몇 년 뒤에는 교감으로 2년 간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박 교장은 회사일과 야학을 병행하기 어려워지면서 1년 간 야학을 중단했다.

그러던 중 1994년 11월쯤 수원 집과 오산 회사를 오가던 박 교장은 수원역 전봇대에 붙어있던 신문지 갱지에 매직으로 쓴 '야학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곳이 제일평생학교였다. 다시 시작한 야학교사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학교에 불이 났고, 오갈 데가 없어져 수원 고등동 성당 지하 교회실 등을 떠돌았다. 당시 졸업생들과 교사, 지인 등의 도움으로 일일 호프집과 찻집을 열어 마련한 보증금 500만원으로 한 교회 가건물에 들어갔지만 일제시대에 지어진 판자 건물이라 낡고 허름했다. 박 교장은 다니던 회사의 직원 2명과 함께 폐자재를 활용해 교실을 꾸며 수업을 시작했다. 박 교장은 "수업을 하다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보였고, 비가 오면 양동이를 갖다놓고 수업을 했다"고 회상했다.

박 교장은 15년 간 제약회사 근무, 벤처 기업 경영을 통해 번 돈을 문맹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문해(文解)교육에 쏟았다. 현재 제일평생학교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에 입주하기까지 우여곡절도 겪었다. 현재 세류동에 위치한 수원제일야간학교는 교회 예배당으로 쓰이던 텅 빈 공간을 지인들과 모은 돈 3000만원 등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천장과 벽은 그대로 쓰면서 칠만 했고, 전기와 냉·난방 시설공사만 급한 대로 마치면서 2011년 3월 정식 개교했다.

그는 "지난 30년 내가 나눈 것보다 돌아온 것이 더 컸다"면서 "수강생 대부분은 60~70대 여성들로, 한글을 자유롭게 읽고 쓰지 못하거나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소외계층이다. 그들에게 배움의 수단을 조금 제공한 것뿐인데 그것을 매개로 개인의 삶의 질이 달라지고 사회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야학 활동은 지역 배움 공동체뿐만 아니라 삶의 공동체의 역할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장은 "이곳에서 문해교육을 받은 분들이 생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수원제일평생학교는 지역의 배움 공동체에서 삶의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