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량당
'남한산성 정상에 청량당(淸凉堂)이 있다.

이회 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다.

남한산성은 북쪽은 벽암이, 남쪽은 이회장군이 축성을 담당했는데 이회는 기초를 튼튼히 해 성을 쌓는 까닭에 사재를 털어 넣었어도 공사가 늦었다.

반면 벽암은 기일 내 완공하고 남은 공사비까지 반납했다.

일이 이에 이르자 그를 시샘하는 무리가 "이회가 공사비를 횡령하고 주색에 빠져 일을 게을리 한다"고 모함했다.

결국 이회 장군은 참형을 당하게 됐다.

하지만 슬픈 기색 없이 말했다.

"나의 죽음이 억울하다면 내가 죽을 때 매가 나타날 것이다. 매가 오지 않는다면 죽어 마땅하지만 매가 오면 죄가 없는 것이다."

과연 그의 베인 목에서 매가 나와 바위 위에서 슬피 울다 갔는데, 그 매가 앉았던 자리에 발톱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그후 이를 '매바위'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발톱자국 부분을 떼어가 지금은 사각형의 자취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 벽암이 쌓은 성은 여기저기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이회 장군이 맡았던 구간은 멀쩡했다.

관가에서는 서장대 인근에 사당을 세우고 그를 위로했다.

한편 부족한 축성자금을 마련해 돌아오던 부인 송씨와 첩은 삼전도에서 남편이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루터 근처 무용도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후 사당 근처에서 여인의 통곡소리가 계속 들려 두 여인의 초상화를 청량당에 모시고 굿을 했더니 더 이상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돌아보면 옳다고 생각하고 했던 일들이 후회와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것들이 많다.

이웃을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입은 벙어리와 버림받은 자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열어야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