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경제 관련 부서의 팀장이 필자를 찾아왔다. '골목경제 활성화 사업'에 적합한 골목을 추천받고 싶다고 했다. 주저 없이 동인천의 대한서림~홍예문 언덕길을 꼽았다. 최근 이 일대가 인천형 골목경제 활성화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인천 최고의 상권으로 여전히 '테마'가 살아 있는 곳이다. 1남3녀(남고 1개교, 여고 3개교)의 고교를 비롯해 초·중학교 10여개가 있던 우리나라 최대의 스쿨존이었다. 문구점, 체육사, 화방, 학원, 탁구장, 사진관, 분식집 등이 성업을 이뤘다. 특히 '쫄면'의 이름을 처음 얻은 고향답게 명물당, 만복당, 맛나당 등 '당'자 돌림의 분식집들이 한 집 걸러 있었다. 학생교육문화회관(옛 축현초) 뒷길의 삼치거리는 한때 전국적 명성을 얻었던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던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어른 손바닥보다 큰 삼치 토막과 걸쭉한 인천 막걸리로 저녁을 대신하면서 시국을 격하게 논하거나 하루의 피로를 풀었던 공간이다.

반대편 내리교회 아래 골목에도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곳은 흔히 '이집트 골목'으로 통했다. 용동마루턱 초입에 '이집트 경양식'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집트 음식을 파는 집으로 오인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인천에서 알아주는 양식집이었다. 붉은 벽돌로 모양낸 커다란 아치형 창에 파라오 형상이 세워진 이국풍 외관을 자랑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건물이 얼마 전 '이집트 경양식'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 세대가 흘렀지만 음식 맛보다 스토리를 좆아 오는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다. 이 덕분에 요즘 이 골목의 빈 점포 임대 문의가 잦다고 한다.

인천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성형 미인이 아닌, 박꽃 같은 자연미 골목이 무던히 남아 있다. 싸리재 골목, 긴담모퉁이 골목, 용동큰우물 골목, 배다리 골목, 수도국산 골목, 수문통 골목, 전도관 골목, 독쟁이 골목, 백마장 골목…. 우리가 어떻게 다가서냐에 따라 멋지게 살아날 수 있는 골목들이다. 건축적으로 아름답지 않더라도 시간을 품은 공간은 다양한 가치를 가진다. 한 집, 두 집 모여서 만들어낸 골목 이야기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제 골목은 추억을 지나 '역사'로 가고 있다. 역사와 문화를 알면 낡았다고 함부로 내려치지 못할 것이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