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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자주 그 갈피에 숨은 의미를 해독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말을 이해했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이해 못 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가끔 옹알이할 때가 제일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몽돌 같은 그 옹알거림을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들었을 테니까. 말 대신, 옹알거림으로, 눈빛으로 얘기할 순 없는 건가?" -양진채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 중에서

최규호 마임이스트는 올해로 22년째를 맞는 인천국제클라운마임축제에서 '사각의 틀'이란 제목으로 공연을 펼쳤다. 소심한 샐러리맨 가장의 고달픈 삶을 집, 회사, 그리고 '관'이라는 사각의 틀로 형상화해서 마임으로 보여주었다. 어두운 무대 위, 인물을 향한 조명만이 표정과 몸짓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최규호 마임이스트가 한 마디 말도 없이 보여준 '사각의 틀'에서 너무도 간절한 샐러리맨의 항변과도 같은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파발마의 시대, 전보나 편지를 보내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전지구적으로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넘쳐난다. SNS뿐만 아니라, 밴드니, 카페니 블로그니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데, 꼭 해야 할 말만 하던 시대가 아니어서 그럴까. 소통을 빙자한 말의 쓰레기가 넘쳐난다. 소통이 아니라 말이 일으키는 폭행과 상처가 '짼 배에 소금 뿌리기' 수준이다. 내 말만 하기에 급급하고 어떻게든 '좋아요' 관심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말은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외로워서 그럴까. 통하지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럴까.

달이 점점 둥글어지고 있다. 유래가 없는 긴 명절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몸을 쉴 수 없거나 마음이 쉴 수 없는 사람들. 이번 명절에는 내 얘기만 하지 말고, 쉴 수 없는 노동자, 취업준비생, 고3, 음식을 준비하느라 허리가 굽을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이야기를 다 듣고, 다정한 눈빛으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을 보름달보다 더 환한 미소를 한번 쓰윽, 짓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보는 거 말이다. 실상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