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섬 길...310.5㎞ '강화나들길' 가을따라 거닐다
고려의 흔적따라 발걸음 ... 해안서 만나는 해양관방 유적
자연 벗삼아 황금들녘·낙조 만끽 ... 섬 속의 섬, 보물섬 여행
▲ 강화나들길 11코스 석모도 바람길. /사진제공=강화군
▲ 강화나들길 2코스 갈대밭. /사진제공=강화군


과거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한반도 역사의 매 순간과 마주한다.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고려의 문화유산, 나라를 지킨 조선시대 유적들이 펼쳐진다. 드넓은 갯벌과 낙조가 반을 가르는 바다는 길동무가 된다. 저마다의 특색을 품은 섬들은 일상 속 휴식을 선물한다. 310.5㎞. 걸음은 어제와 오늘을 잇고, 일상과 자연을 아우른다. 강화나들길은 20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다. 3~6시간씩 걸리는 코스를 관심 있는 주제와 난이도에 맞춰 고르면 된다. 코스마다 출발·완주 지점에는 각기 다른 그림으로 새겨진 도장이 있다. 나들이를 떠난 여행자들을 위한 도보여권이다. 여권을 채울수록 강화나들길과도 한층 더 가까워진다.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궁금할 땐 강화나들길 모바일 앱이 도와준다.


▲역사의 흔적을 거닐다
첫 번째 길은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시작된다. 갑곶돈대까지 이르는 제1코스 '심도역사문화길'에선 천 년을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고려의 도읍지였던 강화는 한때 '심도(沁都)'로 불렸다. 고려궁지와 강화산성, 조선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용흥궁을 거쳐 대산마을 벌판을 보며 연미정으로 향하는 길에는 옛 정취가 묻어난다. 코스 초반 성곽길을 지나면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오솔길을 거닐 수 있다.

제3코스 '고려왕릉 가는 길'은 온수공영주차장과 고려 24대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 무덤인 가릉을 연결한다. 전등사를 둘러보고 삼랑성에서 시작하는 길이다. 정족산성으로도 불리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가릉으로 향하다 보면 길정저수지를 따라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우거진 마을을 지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논도 펼쳐진다. 고려의 대문장가 이규보(1168~1241) 선생의 묘소에 이어 고려 21대 희종이 잠든 석릉과 고려 22대 강종의 비인 원덕태후 유씨가 누워 있는 곤릉과 마주한다.

고려의 흔적을 담아 가려면 제15코스 '고려궁 성곽길'로 발을 들이면 된다. 고려궁 성곽과 동서남북으로 세워진 문을 돌아보는 길이다. 남문에서 청하동 약수터를 목을 축인 뒤 남장대에 올라서면 강화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화저수지 산책로를 따라 서문, 강화향교를 돌아 북문, 용흥궁공원을 통해 동문까지 닿는다. 일부 구간이 겹치는 제1코스 '심도역사문화길' 여행자들과도 만난다.

제17코스 '고인돌 탐방길'로 접어들면 강화지석묘와 강화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출발할 수 있다.

점골지석묘를 시작으로 삼거리·고천리·오상리 고인돌군을 탐방하는 코스다. 해넘이를 볼 수 있는 낙조대를 거쳐 적석사로 내려온다. 이 코스는 강화나들길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축에 속한다.

숲으로 이뤄진 능선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오상리 고인돌군에서 코스를 끝내면 내가저수지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나들길에서 만나는 해양관방유적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라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꼽혔다.

나라를 지키는 터전이자 바닷길을 통해 드나드는 관문 역할을 했다.

강화도 해변에는 섬을 둘러서 만든 53개의 돈대가 있다. 고려시대 몽골과의 항쟁부터 19세기 말 병인양요·신미양요에 이르기까지 국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서려 있다.

강화나들길을 걸으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준비되고 있는 해양관방유적들도 마주한다.

해양관방유적은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방어 진지 등의 문화재를 일컫는다.

갑곶돈대에서 초지진에 이르는 17㎞의 제2코스에는 '호국돈대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포와 마주한 해변을 남북으로 길게 연결한 코스다. 용진진과 용당·화도·오두돈대, 광성보, 덕진진 등 역사의 흔적과 끊임없이 조우할 수 있다.

진과 보, 돈대는 모두 해안을 방어하는 시설이다.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가 설치됐다. 진이 보보다 규모가 큰 개념이다. 돈대는 진과 보에 소속돼 관측과 방어를 맡은 소규모 군사 시설이었다.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강화도에는 돈대가 53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국돈대길말고도 강화나들길 다른 코스들도 해양관방유적을 품고 있다. 호국돈대길 반대 편인 제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에는 무태·망월·계룡·망양돈대가 자리한다.

제4코스 '해가 지는 마을길'에선 건평돈대를, 제7코스 '낙조 보러 가는 길'에선 북일곶돈대를 만날 수 있다.

강화도 남쪽 해변을 걷는 제8코스 '철새 보러 가는 길'과 제20코스 '갯벌 보러 가는 길'은 분오리돈대를 경계로 나뉜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자연을 벗 삼아
 제4코스 '해가 지는 마을 길'로 발길을 돌리자.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걷다 보면 향긋한 풀 내음과 싱그러운 숲의 청량한 기운이 마음을 진정시킨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연이 선사하는 선물을 만끽해보자.

 마을을 지나 건평나루에 들어서면 짭조름한 새우젓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시장기를 달랠 수 있는 간식 준비는 필수다.

 해안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탁 트인 외포리 앞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안녕을 고하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한가득 짊어졌던 일상의 짐도 훌훌 털어내자.

 화도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는 7코스 '낙조 보러 가는 길'도 빼놓을 수 없다.

 양지바른 마을 길에서 벗어나면 찔레 향기가 가득한 상봉산 일만보길에 들어선다. 우거진 나뭇잎이 만들어낸 푸른 터널길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천연기념물 제419호이며 세계 5대 갯벌인 1억4000만 평의 광활한 강화갯벌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갯벌에서 서식하고 있는 저어새 등 천연기념물과 보호종 등도 볼 수 있다.

 일몰 조망지에 다다르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석양이 우리를 반긴다. 뉘엿뉘엿 지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음이 애석하기만 하다.

 따스한 햇살과 높은 하늘,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은 가을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16코스 '서해 황금 들녘길'은 가을에 거닐기에 가장 적합한 코스다. 드넓은 망월평야와 바다를 끼고 둑길을 걸으면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아쉽다면 인근 덕산산림욕장에 들려 자연을 만끽하는 것도 방법이다.

 ▲강화속의 강화, 보물섬 여행
 강화나들길을 통해 섬 여행도 즐길 수 있다. 9코스와 10코스는 교통도를 거친다. 삼국시대 이래 서해안 해상 교통의 요지로 자리매김한 교동은 고려·조선 왕족들이 유배지로 삼았던 곳이며 조선 중기엔 경기·황해·충청 삼도 수군을 담당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된 섬이기도 하다.

 월선포를 출발해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가면 최초로 공자상을 모신 교동향교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 동국 18현인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화개사를 지나 화개산 정상에 오르면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닿을듯한 북녘땅의 모습에 괜스레 가슴 한 켠이 저릿하다.

 대룡시장은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지만 다른 지방의 소읍보다도 규모가 작다. 마치 60~70년대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대룡시장은 옛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1코스는 석모도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소리에 발걸음마저 가볍다.

 짭조름한 소금 내음이 풍기는 어류정항에는 어선 이름을 딴 포장마차 형 횟집들이 즐비하다. 직접 잡은 횟감을 저렴한 값에 맛볼 수 있다.

 민머루 해수욕장은 해수욕보다는 갯벌 체험에 적합한 곳이다. 물이 빠지면 약 1㎞ 정도의 갯벌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개와 게 등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1코스의 종착지는 보문사다. 우리나라 3대 관음영지 중 하나인 이곳에서 기도 발원을 하면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을 다른 곳보다 더 잘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노송 그늘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가면 돌담길이 펼쳐지는데 고목들과 어우러진 풍경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저절로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이 밖에 12코스는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앞장술·뒷장술 해변과 초기 강화 주민들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앙교회가 위치한 주문도, 13코스는 800살도 더 먹은 커다란 은행나무와 조개골 해수욕장이 있는 볼음도로 짜여있다.


/곽안나 기자 lucete237@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