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경기본사 사회부장

오늘 아침 밥상에서 즐겨먹던 계란이 사라졌다. 계란 프라이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쓱쓱 비비면 별 반찬 투정없이 한그릇 뚝딱 해치웠던 터라 오늘 아침에는 어딘가 모르는 허전함마저 몰려들었다. 아내에게 "계란 다 버렸어?"라며 묻자, 아내 왈 "먹지마"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초유의 '살충제 계란' 파동이 낳은 소시민의 밥상 풍경이다.

완전식품인 계란이 '반란'을 일으켰다. 도시 변두리에 살면서 닭을 키우며 갓 낳은 따뜻한 계란으로 밥상을 채웠던 어린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매년 조류독감(AI)으로 계란 파동이 일상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계란과 이별을 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남겼다.

한마디로 인간계의 이기심이 낳은 참극이다. 우리는 닭을 알과 고기를 공급하는 기계로 여겼다. 닭을 움직일 수 없는 밀집된 한뼘 공간에 가두어 사육했다. 1990년대 이후 양계사육이 산업화하면서 으레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보니 정부나 보건식품 안전 당국이나 농산물 유해물질 검사 기준치에도 포함되지 않은 채 살충제 양계와 계란을 먹어왔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이달 초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유통된 계란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돼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네덜란드는 유럽 최대 계란 및 계란 가공 식품 수출국으로 매년 약 100억개의 계란을 생산해 이중 65%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AI 파동으로 부족한 계란 공급을 대체하기 위해 긴급수입한 유럽산 계란에 대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10일 뒤 국내산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 살충제 계란 파동은 예견된 인재(人災)
국내산 계란의 살충제 파동은 지난 7년 전 이미 예고됐다. 감사원이 지난 2010년 4월 피프로닐 성분 등 인체 유해물질을 식품검사항목에 포함할 것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통보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은 감사원의 지적을 묵살했다. 식품 보건당국은 국내 식품·식약 관련 규정은 지난 7년간 축산물에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의 허용치를 제시하지 않았고, 유통량 등 현황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를 외면해 왔다. 그러는 동안 시중에는 살충제 성분이 포함됐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계란이 유통됐다.

정부는 유럽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지난 정부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계란에 대한 살충제 사용여부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국내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지난해 마련된 허용 기준치를 훨씬 초과해 검출돼 유통을 전면 금지하면서 더이상 우리밥상에서 계란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 먹을거리의 반란(叛亂)
더이상 계란을 완전식품이라고도 말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인은 1년에 1인당 계란 268개를 소비한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하루 9억6000만 마리의 닭이 소비됐고, 계란은 4000만개를 먹었다. 국민 먹을거리와 가장 밀접한 계란이 반란을 일으켰다. 197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는 닭을 방목해 키웠다. 닭은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기 위해 흙에 나뒹굴고 흙을 뿌려 스스로 해충을 막았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 계란 소비가 늘어나면서 한국은 닭을 밀집된 한뼘 공간에 가두어 사육하고, 진드기 퇴치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살충제에 오염된 닭은 살충제 계란을 낳았다. 우리는 그것을 매일 밥상에 올렸다. 국민 먹을거리와 가장 밀접한 닭이 더이상 이렇게 살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AI닭과 살충제 계란 등으로 인간계를 위협했다. 

이뿐인가.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 중에도 햄버거, 족발, 편육 등 서민 먹을거리에서의 식중독균 검출, 소주 이물질 검출 등의 소식이 이어졌다. 살충제 달걀 파동과 관련한 정부 당국의 전수조사에서는 '친환경'으로 포장됐던 제품에서 대거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식품안전관리체계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매년 반복되는 먹을거리 사고는 정부와 지자체의 땜질처방에 원인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공포가 매년 반복돼도 누구하나 나서서 닭이 살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한 법안을 제정하려고 노력도 안 했다. 정치권과 정부, 지자체는 먹을거리 업체들의 눈치는 그만 보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근본적인 법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