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Augustus), 정확하게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로 기원전 63년 로마의 남동쪽 벨레트리(벨리트라이)에서 태어나 서기 14년에 세상을 떠났다. 옥타비아누스의 어머니 아티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누이인 율리아의 딸이었는데, 카이사르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옥타비아누스를 물심양면으로 이끌어주었다. 하지만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되기 전까지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무명의 젊은이에 불과했다. 당시 20세도 안된 앳된 젊은이 옥타비아누스는 노련한 장군이자 음모에 능한 정치인이었던 안토니우스와의 치열한 대결에서 놀라운 인내력을 발휘하며 마침내 승리하였다.

그는 41년의 재위기간 동안 팍스로마나의 초석을 다졌고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리비우스 등이 활약하는 로마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지난 2014년 그의 출생지인 이탈리아의 벨레트리에서는 아우구스투스 서거 2000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특이한 점은 이 행사가 국가적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 아니라 인구 불과 5만명의 작은 도시 벨레트리가 자체적으로 준비해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벨레트리가 이런 축제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저력은 중세시대 이래 꾸준히 이어져 온 '길드'와 '자치도시'의 역사, 다시 말해 '꼬뮤네(commune)'라는 전통과 경험 덕분이었다. 이탈리아 북부 산업화 지역에서 발달했던 '공장평의회'제도 역시 이 같은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고, 오늘날 이탈리아는 지역 협동조합의 성공적인 사례를 가지고 있다. 다가오는 7월31일이면 평화통일을 주창하다 억울하게 법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죽산 조봉암의 기일이다.

그는 1899년 인천 강화에서 출생해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이후에는 중도통합노선을 주장하며 대한민국 건국에 이바지했다. 1948년 5·30선거 때 인천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농림부장관이 되어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다가오는 2019년이면 죽산 탄생 120년이자 서거 60주년이 된다. 과연 인천은, 인천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