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어니언스 기자
정치에서 보수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보수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말 무렵이다. 당시 영국의 보수당을 번역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때는 보수가 아니었다. 영어의 conservative는 '수구'로 번역됐다. 그래서 보수당도 수구당으로 불렸다. 보수가 제 이름을 찾은 것은 1880년대 초반이다. 1882년 조선의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 당시 일본은 흥선대원군 세력들을 수구파로 부르며 비난했다. 2년 뒤에 일어난 갑신정변 때는 명성황후가 수구파로 매도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구가 전통에 매달리는 사람을 경멸하는 용어로 사용되자,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conservative가 보수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처럼 특정한 정파나 정치성향을 뜻하는 말로 쓰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낡은 관념에 젖어 고집이 센 사람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됐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보수는 일상의 영역에만 머물렀다. 해방 이후 좌우 이념이 크게 대립할 때도 보수는 쓰이지 않았다. 당시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들은 서로를 반동과 매국으로 불렀다. 이 같은 선동적인 말이 보수와 진보를 대신하는 탓에 굳이 보수를 쓸 필요가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보수는 여전히 일상의 용어로만 머물렀다. 권위주의 정부의 통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듯이 진보가 있어야 그 반대세력으로서 보수가 존재하는 것인데 당시 사회분위기는 진보를 용납하지 않았다. 1958년 진보당 사건, 이후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 동안 진보가 정치적으로 힘을 갖지 못하니 이에 맞서기 위한 보수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과 비슷한 정치적인 용어로 쓰이게 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진보 세력의 주도로 통일에 대한 담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진보는 남북대화, 평화, 자주, 반미를 대표하게 됐고 자연스레 보수는 남북대결, 냉전, 예속, 친미를 대변하게 됐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이 제도권 정치에 들어오면서 노동 이슈가 활발히 논의되자 보수에 반노동의 성격도 더해졌다. 서울시 무상급식 논란이 있을 때 보수는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고, 선별적 복지에 찬성하는 쪽에 서기도 했다. 이처럼 짧은 역사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보수가 탄생한 것이다.

한국 보수의 역사가 짧다는 것은 그만큼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뜻한다. 대선기간 동안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거론되던 기본소득은 원래 유럽의 보수에서 먼저 얘기되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보수들은 그것을 '퍼주기'라며 비난하곤 했다.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집회로 대표되던 보수의 모습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통보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무엇을 지켜야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없었던 탓이다. 최근 20~30년에서야 정치적인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보수가 자체적인 정체성이나 고유의 영역을 구축하기보단 진보 진영에 반대하는 주장과 이념만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전쟁의 경험과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린 반공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사실상 한국의 보수는 반공 이외에는 지켜야할 게 없다. 무엇을 지킬지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 없이, 그저 진보가 주장하는 건 모두 반박하며 반공과 독재자 추앙만 남은 게 한국의 보수인 셈이다.

한국 보수의 존폐가 한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 도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동시에 보수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19대 대선에서도 패배하면서 이들의 정치적 생명은 바람 앞 촛불 신세가 됐다. 야당으로서의 역할은 해야 되기에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문자폭탄 등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사실상 정치권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존폐가 결정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보수의 역사는 길다. 영국의 보수당이나 유럽의 정통 보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의 보수처럼 단기간이 아닌 오랜 시간동안 이념과 정체성을 다져온 것이다. 그렇기에 지지자들로부터 쉽게 외면당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적폐로 치부되며 싸늘한 시선을 받는 일도 없다. 한국의 보수가 참고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난 역사가 짧기에 당장의 집권이나 정국 주도에 공을 들이기보단 길게 보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보수로서 무엇을 지켜야하는지 고민하고 한 번 정하면 태세에 따라 흔들림 없이 고수해야 할 것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 인고의 시간이 길어야 보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