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기 황해섬네트워크 상임이사
▲ 선착장에 닿으면 맨 먼저 만나는 인어상.
봄빛이 따사했던 지난 주 장봉섬에 다녀왔다. '장봉도에서 미래를 묻다'라는 좌담회에서 섬주민의 고충을 들었다. 병원과 교육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섬살이의 고달픔을 하소연했다. 연륙교의 희망도 품었다. 하지만 난개발이 된 영흥도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육지화된 섬은 섬으로서 존립 가치가 없지 않느냐는 토로였다. 섬습지 보호구역 지정으로 주민 사이에 오해도 컸다. 장봉섬 역시 개발과 보전 사이의 갈등이 양립했다.
섬의 75% 이상을 외지인들이 소유한 터라 해안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섬 고유의 나눔과 공생의 공동체가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이구동성으로 결국은 사람을 꼽았다. 섬주민이 스스로 깨어 있지 않고서는 섬의 현안 과제를 풀기 어렵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장봉도는 여느 섬과 달리 섬으로서의 특색을 두루 갖췄다. 수군통어영의 장봉진, 사신들을 영접했던 대빈창, 국영 말농장이었던 마성터, 보릿고개를 넘긴 유적인 구황비 등이 전해온다.
1910년 이후 민어 어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날가지도의 '인어이야기'는 풍어를 기원하는 전승민담으로 아직도 생생하다. 인근의 만도리어장은 근기(近畿) 지방 최대의 황금어장이었다. 서만도, 동만도는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등 보호종으로 알려진 새들의 천국이다. 지천으로 바지락, 상합, 굴 등이 널려있다. 봄여름에는 밭농사와 맨손업, 가을, 겨울에는 쌀농사와 새우잡이로 쉴 새가 없을 정도로 사철 풍요로운 섬이다.

장봉도의 풍경을 담은 '장봉팔경'이 있다. 이중 유달리 관심을 끄는 것은 '연정세탁(燕井洗濯)'이다. '제비우물에서 빨래하는 아가씨들의 웃음'을 팔경으로 삼았다. 아닌 게 아니라 장봉도에는 바닷가 해변에 물맛 좋기로 이름난 세 우물이 있다. 찬우물, 벼룩우물, 제비우물. 그 중 '제비우물'은 주민들에게 해방된 방담의 자유를 만끽하던 장소로 사랑을 독차지했다.
제비만큼 다양한 상징을 품고 있는 새도 드물다. 봄을 알리는 '삼월 삼짇날' 손님으로 온다는 새다. 제비를 귀한 손님으로 맞이한 연유는 길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선 제비는 봄을 알리는 선구자다. 제비날개는 연미복을 상징해 멋진 신사로도 여겼다. 귀소성이 강한 제비는 일부일처로 부부금슬이 좋기로 이름난 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새로도 귀하게 여겼다. 흥부가 중 박씨를 물어다주는 '제비 노정기'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보은을 가져다주는 새로 상징된다. 그래서일까. 집에 혹여 제비 둥지라도 틀면 귀하게 여겨 둥지를 헐지 않았다.

오늘날 제비는 환경오염의 지표다. 환경이 오염되면 제비를 볼 수 없다. 도시에서 제비가 사라진 것은 오염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가비얍게' 솟구치는 물 찬 제비의 비상을 어디서 볼 수 있으랴. 이제 제비는 겨우 섬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나는 제비우물에서 장봉도의 미래를 본다. 손님을 극진히 '환대'했던 섬문화의 귀환을, 나는 장봉섬의 제비우물을 통해 상상한다.

섬문화 유산은 육지의 크고 높은 욕망의 마천루에 있지 않다.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돈으로만 따지려는 일편도 버려야 한다. 섬다운 것은 화려하고 웅장하며 기교가 넘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낮은 곳에 있다. 사람 때 묻은 소소함! 범부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한 것이 오히려 섬다운 것이다.
  
우리가 애써 지켜야 할 것은 소박하고 정갈하면서 섬주민의 애환이 어린 장소다. 섬문화의 재발견은 우리에게 잊혀진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 아니다. 고립되고 찢겨진 삶의 길에서 걸어오고 걸어갈 길에 대한 성찰이다.

제비우물은 섬주민의 애환을 품고 있다. 장봉도 섬유산 일번지의 출발지인 인어상과 함께 평촌의 어업조합건물, 푸른학원과 네덜란드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종패사업을 기념한 표지판, 당산목, 독살과 함께 어우러져 섬유산의 보고로 손색없다. 섬 둘레길인 '갯팃길'로 장봉도와 제비우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란다. 이제 곧, 장봉섬에 '훨훨' 제비가 날아 올 것이다.

이세기는=시인이자 문학박사로 현재 황해섬네트워크 상임이사와 인천섬연구모임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