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등사는 1600년을 이어온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찰이다. 봄이 깃든 전등사 경내가 고즈넉하다.
▲ 정족사고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전국의 사고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이 곳에 있던 책들은 일제강점기 서울 규장각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햇살이 사찰 지붕위로 나풀나풀 내려 앉은 어느 봄날 찾은 강화도의 '전등사(주지 승석스님)'는 따사로웠다. 보물 178호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장'의 표정에까지 봄햇살이 깃들어 있었다. 사찰을 찾은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경내에 벗꽃처럼 흩날렸다. 전등사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천년고찰', '세계문화유산을 만들고 지켜낸 사찰', '익살과 풍자 자비의 전설'을 품은 절이다. 신화와 호국의 정기가 어린 곳이기도 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봄 속의 전등사만큼 좋은 봄소풍 장소도 드물 것이다. 이번 주,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전등사를 찾아보자.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천년고찰
전등사는 단군신화의 전설을 품은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 사찰이다. 전등사는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아도화상'이 창건한다. 무려 1600여년의 역사를 품은 고찰인 것이다.

본래 '진종사'란 이름을 갖고 있었으나 1282년 '전등사'란 이름으로 개명한다. 고려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주는 원나라 세조의 딸에게 남편(충렬왕)을 빼앗기자 이 곳을 찾아 밤낮으로 기도를 올린다. 이때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전등사는 이후 정화궁주의 원찰로써 고려말까지 고려왕실의 보호를 받는 국찰의 성격을 띠게 된다. 전등이란 말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전등사가 호국사찰로 우뚝 선 것은 1232년부터 몽골의 침입,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에 이르기까지 온갖 외적의 침략을 온몸으로 막아낸 강화도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1232~1270년, 미국함대가 함포를 앞세우고 들어온 신미양요(1871년),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병인양요(1866년) 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앞장서 외적을 막아냈다.

▲세계문화유산을 만들고 지켜낸 사찰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한 '팔만대장경'을 판각하고, 조선 태조~철종 25대 472년의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정족사고 등 전등사는 기록문화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정족산사고본 1181책만이 유일하게 진책으로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서울대 규장각이 보관 중이다.

정족산사고엔 실록과 함께 왕실문서를 보관했는데 실록을 보관하던 건물이 '장사각'이고 <선원세보>와 같은 왕실문서를 보관하던 건물이 '선원보각'이다.

대웅보전을 지나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명부전', 산 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약사전'을 지나 산을 오르면 '정족사고'가 나온다.

1762년 영조임금은 전등사를 찾아 '취향당' 편액을 내렸으며, 1749년엔 영조가 시주한 목재로 '대조루' 중수 불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1719~1910년 전등사의 가장 큰 스님에겐 조선시대 최고 승직인 '도총섭'이란 지위를 주기도 했다.

▲신화와 호국의 정기가 어린 삼랑성
정족산은 단군의 숨결이 흐르는 산이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성문을 길게 쌓은 성을 만난다.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은 '삼랑성'이다. 고대 토성으로 시작한 이곳에 강화도의 민초들은 돌을 다듬고 쌓아 성벽을 구축한다. 산 지형을 따라 쌓은 삼랑성은 능선을 따라 2300m에 이른다. 동서남북에 성문이 나 있다.
전등사를 품은 산은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이다. 강화도 주봉인 마니산의 줄기는 온수리에서 세 개의 봉우리를 이룬다. 정족산은 이 세 개의 봉우리가 다리가 셋인 솥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찰로 들어가기 위해 정족산을 오르다보면 중턱 쯤에서 예쁜 찻집을 만난다. 연꽃빵과 대추차, 오미자차가 유명한 '죽림다원'이다. 이 곳에 앉아 풀나무향을 맡으며 마시는 차 한 잔은 극락과 세상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해 준다.
전등사를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봄햇살이 피어나고 있었다.

▲전등사 템플스테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책상다리위에 올린 사람들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철-썩!" 졸고 있는 중년 신사의 어깨에 죽비가 내려 앉는다. 깜짝 놀란 남자가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참선에 잠긴다. '나는 누구인가.'

전등사 '템플스테이'는 스님과 함께 절에 머물면서 자신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는 '사찰체험'이다. 적게는 1박2일, 길게는 4박5일 동안 사람들은 '참선'하는 시간을 갖는다. 스님과 똑같은 시간에 예불을 올리고, 공양(식사)을 하며 스님과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차담' 시간도 갖는다.

전등사 템플스테이는 '한박자 쉬고'(주중 휴식형), '쓰담쓰담'(주말 체험형)으로 나누어진다. 2박3일 체험형인 '심심(心尋)풀이'형과 여름방학과 휴가철에만 운영되는 특별프로그램도 있다.

전등사는 30~4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실과 3개동 15개의 방사를 갖고 있다. 대부분 2~3인용이어서 가족과 친구·동료들간 함께 머물기에 적합하다. 내년 이후엔 동문 밖에 '전등각'이란 한옥호텔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등사 템플스테이엔 월평균 200여명 이상이 발걸음을 한다.

김태영 전등사 템플스테이 팀장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불교의 우수성과 전통문화를 알리고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은 도심을 떠나 자연의 품에서 편히 쉬고 사찰음식을 맛보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데 템플스테이의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요금은 성인의 경우 5~8만원, 청소년은 4~6만원이다. 032-937-0152

/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