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이를 본 한 여자가 당나귀를 타고 가면 편하지 않느냐는 말에 아버지는 아들을 태운다. 얼마 뒤 만난 노인이 아들만 편히 당나귀를 탄다는 말에 아버지는 아들을 내리고 자신이 탄다. 또 얼마 못 가 아이를 품에 안은 부인으로부터 혼자 걷고 있는 아들이 불쌍하다는 말을 듣고 아들도 태운다. 이번에는 한 젊은이로부터 당나귀가 너무 지쳐 보인다는 말에 아들과 함께 당나귀를 장대에 묶어 매고 간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걷던 부자는 결국 다리에서 당나귀를 떨어뜨리고 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자(父子)와 당나귀'라는 이솝우화 내용이다. 지금 승기하수처리장 재건설과 관련해 인천시가 보이고 있는 행태가 동화 속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갈팡질팡하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행정 탓에 지역주민의 갈등만 부채질하고 재건설은 늦어져 환경오염과 악취피해만 늘어가고 있다. 갈등의 조정자 역할은 온데간데없고 자치단체 간 싸움도 모자라 환경단체까지 가세한 이전투구 양상을 보면서 시가 과연 광역자치단체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1995년 준공된 승기하수처리장은 하루 27만5천t의 처리용량을 갖춘, 인천에서 두 번째로 큰 하수처리시설이다. 당시만 해도 승기하수처리장의 입지는 바다와 인접한 인천의 최남단 육지였으나, 송도국제도시가 인근에 들어서면서 현재는 도심지가 하수처리장을 둘러싼 곳에 위치하게 됐다. 승기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는 하수는 연수구 51%, 남동구 27%, 남구 22%다. 이런 중요한 도시기반시설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준공된 지 20년이 넘어 시설이 노후했고, 연수구와 남동구의 인구가 늘면서 하수 유입량이 증가했다. 특히 남동산단에서 유입되는 하루 3만t이 넘는 악성폐수는 시설 노후를 가중시켰고, 인천환경공단은 시설개선을 소홀히 했다. 그 결과 승기하수처리장은 한해 300일 넘게 환경기준치를 초과한 하수를 배출하고 있으며 2015년 상반기 전국 하수처리장 점검결과 폐수 오염도가 전국에서 제일 높았다.

배출수의 수질악화와 시설노후로 인한 악취로 인근 주민들은 수년 동안 말 못할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뒤늦게 시는 지난 2014년 10월 승기하수처리장 재건설 관련 타당성 검토를 위한 조사분석용역을 발주한다. 그 동안 연수구는 지속적으로 하수처리장 문제에 대한 주민의견을 제기하면서, 시가 방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자 지난해 2월 시장 연두방문 때 승기하수처리장 재건설 문제를 당면 현안으로 공식 건의했다.
이후 시는 현 부지 지하화와 남동유수지 이전을 놓고 오락가락하다 결국 최근 현 부지 재건설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1년 넘게 시가 보여준 불확실한 행정은 불신과 자치단체 간 갈등만 조장했다. 이런 중대한 사안일수록 투명한 절차에 따라 각 방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지역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분명 어떤 선택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방안이 결정되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그간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못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어떤 방안을 검토한다고 알려 여론을 떠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이게 어떻게 책임 있는 행정기관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승기하수처리장 현 부지 지하화를 결정한 시의 속내는 이럴 것이다. 다른 데로 옮기면 해당 지역주민들이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니, 현 부지에 재건설하는 것이 민원이 덜 발생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동안 피해를 감수하고 있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피해를 봐도 된다는 논리다.
시는 남동유수지로 하수처리장을 옮기는 조건으로 남동구에 그린벨트 해제 지원, 100억원대의 개발이익금 지급, 남동산단 주차장 확보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하니, 애초에 안전이나 저어새 서식지 보호는 이전반대를 위한 핑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연수구는 아직까지 시의 결정에 대한 근거와 향후 대책, 보상방안에 대해 일절 들은 바가 없다. 시는 충분한 설명과 보상방안 제시를 통해 연수구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필자를 비롯한 연수구민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지난 수년 간 악취와 환경오염에 시달린 연수구민의 분노를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로 폄훼하면 안 된다.

그동안 시는 지역간 갈등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중재하기 보다는 눈치만 보며 갈팡질팡해왔다. 승기천변 관리구역 조정 문제도 그렇다. 남동산단에서 방류하는 폐수로 오염된 승기천을 연수구가 직접 나서 살리겠다는데도 남동구의 눈치만 보며 또 뒷짐만 지고 있으려는 모양새다. 광역자치단체로서 시의 책임 있는 행정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 마침 유정복 시장이 오는 28일까지 일정으로 군·구 연두방문을 하고 있다. 방문에 앞서 시는 군·구의 현안이 곧 시의 현안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 시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은 물론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적극 제시하겠다고 했다.

이번에야 말로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연두방문의 목적도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함이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이제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