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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극장에 걸렸다. <초속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등의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작화 솜씨가 무색하지 않게 이번 작품에서도 멋진 작화를 선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전반적으로 호감을 가졌으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주인공 타키와 미츠하의 비중이 초반에는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완연하게 타키쪽으로 기우는 비대칭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중 문제만은 아니다.

미츠하는 시골에 사는 여고생이고 일종의 무당의 형태를 취하는 캐릭터다. 미츠하가 초반에 그 자신과 타인, 그리고 종래에는 세계의 파탄을 막는(정확히 말해 세계를 구원하게 되는 타키에게 그 사명(?)을 부여)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체성이나 일종의 '힘'은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반대편에 '타키'라는 도시의 남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타키는 그 자체로 보면 도시에 사는 평범한 남학생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츠하를 만난 이후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위험에 뛰어드는 이른바 '용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지점을 타키의 주체적 행보로 본다면 그 기원은 미츠하와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미츠하의 주체성이 타키의 '기획'의 일부로 휩쓸려버리고 마는 것이 아쉽다.

영화 제목인 '너의 이름을'의 의미는 개인의 존재를 상징하는 '이름'을 부르는 행위로 하여금 각자의 존재를 자각하고 또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다만 영화가 일종의 '성 역할'의 비대칭성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초기의 설정과는 다소 동떨어지게도, 미츠하라는 여성이 타키라는 남성이 이름을 물을 때에야 비로소 행위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성별에 대한 일종의 '기대치'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여 씁쓸하다. 성별과 무관하게 이름이 다만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때 각자는 인간주체의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이름은 #성역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