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구(인천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만해 한용운 '님의 침묵' 중에서)

존경하는 하상령 선생님.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가신단 말입니까.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가시는 걸음걸음에 우리 인천의 후학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선생님의 100년 삶은 일제의 수탈과 민족 차별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정치적 독립과 자유를 추구해온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경제적 자립과 평등교육, 한민족의 자각을 통한 자주 통일국가 건설은 당신의 평생 소원이었지요.

우리 민족 고유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민족의 자주독립을 확보하려 쉼없이 달렸던 당신입니다.
조소앙 선생과 함께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외치며 좌·우파를 통합한 신민주국가 건설에 앞장섰던 청년 하상령의 굳센 사자후가 들리는 듯 합니다.

외세의 개입과 남북 분단 고착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인천에선 유일하게 남북대표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당신의 심정을 상상해 봅니다.

일제강점기 인천 사람들의 민족 혼을 일깨우기 위해 당신은 인현동에 위문당(爲文堂)이란 책방을 내기도 했지요.

당신의 민족애는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태생적 필연으로 이어진 선택불가의 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광복 후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났고, 친일에 대한 역사적 단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선 생전에 늘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셨지요.

그러나 선생님. 부디 염려하지 마세요.

새로운 대한민국, 통일한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 후학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겠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는 만해의 시구절을 믿습니다.

/김용구(인천대 경영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