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 소장
내 기억으로 유정복 인천시장은 취임 후 한 번도 빠짐없이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날 많은 인천시민들에게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다. 나라 안팎이 극도로 어지러운 이 해 12월에도 그랬다. "올해는 인천이 인구 300만에 면적 1위의 대도시로 발전한 특별한 해이었다.

내년에는 복지와 문화 등 인천 중심의 주권을 확립하여 시민행복체감지수를 높이고자 차분히 계획을 세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시민들께서도 2016년 마무리 잘 하시고 이웃들과 함께 따뜻한 연말 잘 보내시길 바란다." 때가 때이니만큼 다른 달들의 의욕적인 시정 소개나 성취의 다짐들에 비해 이번 달에는 다소 정리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그 속에서도 인천의 올 최대 화두였던 인구 300만과 면적 1위라는 대도시 비약의 기쁨을 감추지 않고 "인천 주권"이라는 유정복 시정의 표어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내년에는 복지 문화를 중심으로 시민행복의 실질적인 체감지수를 높여보겠다는 의지도 읽을 수 있다. 얼핏, 고마운 송년 인사말씀쯤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편지 덕분에, 지난 한 해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화두들이 머릿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300만의 인구와 전국 광역시 중 1위의 도시 면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검단 신도시 조성 계획의 무산과 그 전후 사정, 좀처럼 대안을 찾지 못하는 아시안게임 후유증의 뒷정리, 경제자유구역의 침체와 아트센터를 비롯한 송도 국제업무단지 조성의 표류, 영종·용유·무의 일대를 기약 없이 떠도는 문화 관광 개발계획의 불안한 출렁임, 언제쯤이면 가닥이 잡힐까 싶은 수도권 매립지 문제, 도무지 뜬 구름 잡는 얘기로 밖에는 가닥이 잡히지 않는 가치재창조, 8대 전략산업, 인천주권론 밑에 방대하게 펼쳐진, 수를 헤아리기 조차 힘겨운 사업, 사업, 사업 계획들…. 게다가 강화와 옹진의 예에서 보는 것 같은 해묵은 보존과 개발의 논쟁을 비롯해 주민숙원 사업에 대한 시각의 조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솔직히 이런 조건들 속에서 '내년에는 복지와 문화 등 인천 중심의 주권을 확립하여 시민행복체감지수를 높이는' 것이 가능한 약속일지 의문이다. 인천은 정말 가능성이 차고 넘치는 희망의 도시이고 행정부가 시도 때도 없이 시민들을 모아 교육하고 홍보하듯이 미래를 믿어도 되는 꿈의 도시인 것일까.
2013년 9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경제자유구역 10년의 흔적을 돌아보며 홍보 겸 기록용으로 편찬한 사진집의 제목이 "길은 도전하는 사람에게 열린다"이다. 정말 그럴까.

이러한 의문들에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오늘 인천의 모습을 보자. 유감스럽게도 최근에 매체들과 유관기관들의 조사를 통해 수집되는 인천의 경제 관련 소식들 속에서 밝은 뉴스를 찾아내기는 실로 쉽지 않다. 이미 앞에서도 일부 예를 들었거니와, 거기에 더해서 남동공단의 지속적인 침체, 음식 숙박업으로 대표되는 서비스 업종의 불경기, 소비자 지수의 후퇴, 고실업률의 고착화 등등, 꿈만 꾸고 있기에는 상당히 불안해 보이는 현실적인 위협이 꽤 오래전부터 좋지 않은 불안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일전 인천시민들 몇을 모아 인천을 돌아보는 중에 월미도의 전망대에 올랐다. 사방으로 전개되는 탁 트인 조망에 탄성을 지르는 속에 내게서는 부지불식간에 한숨이 흘러나온다.

발밑에 보이는 내항에 대여섯 척, 북항에 한 척, 외항에 입항 대기 중인 두어 척의 외항선, 멀리 송도 신항에도 정박 중인 외항선은 없는 듯하고…. 인천의 항구에 배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어도 시원찮을 외항선이 보이질 않는다. 순간, 지금 이 시각에도 내·외항을 가득 메우고 있을 싱가포르, 홍콩 항의 선박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에 통증을 안긴다.

문제를 풀고 꿈을 그리는 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러한 방법을 선택하고 시행하는 데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행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어떤 가능한 방법들이라도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벗어나서는 안 되는 범주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어떤 기획자라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기초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입장이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시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실사구시의 시작이 정직한 현실의 성찰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반성 없는 거짓말들을 너무도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위 그 많은 분석과 연구들을 통해서, 연구보다는 늘 정치를 해왔던 것은 아닌가. 정치가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분식해주느라고. 길은 도전하기만 하면 아무에게나 열리는 것이 아니다.

새해부터는 시장의 인사말에서 정직하고 성찰이 담긴 도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