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시회, 짬 내서 한번 가보시게나." 지난달 11일 지역의 어른 한 분이 전시회 개막전에 참석하신 후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하셨다. 그러겠노라 대답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전시회 마지막 날 가까스로 관람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남전 원중식 유작전 <游於藝-예에 노닐다>' 서예 전시회였다. 필자는 서예와 거리가 멀다. 신문지에 쓰는 붓글씨 숙제조차 해본 적이 없다. 선친은 선물 받으신 서예 작품을 표구해서 대학생 아들 방에 걸어 놓으셨다. 필자는 열흘 정도 참고 있다가 올리비아 하셋 액자와 슬며시 바꿔 달았던 기억이 있다.

그날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은 휘둥그레졌고 입은 벌어졌다. 그냥 한번 휘, 둘러볼 요량이었지만 내걸린 작품들은 그걸 용인하지 않았다. '글자가 이렇게 멋질 수도 있구나.' 다양한 서필의 회화적 조형이 이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남전(南田) 원중식(1941~2013), 불현듯 그가 궁금해졌다.

그는 인천중·제물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대에 진학했다. 1960년 여름방학, 만국공원에 있는 인천시립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장 검여(劍如) 유희강에게 간청해 바로 그날부터 박물관 지하에서 글자 쓰기를 시작했다. 서울 인사동에 '검여서원'을 열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는 서실을 청소하면서 검여가 쓰다가 구겨버린 종이를 주워 모아 정성스레 펴놓고 스승이 쓰던 방식대로 연습을 되풀이 했다. 검여가 캐비넷을 돌릴 때마다 번호를 슬쩍 외어두었다가 몰래 그것을 열고는 그날 스승께서 무엇을 썼는지 훔쳐보곤 했다는 등 숱한 일화가 전해 온다. 검여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남전은 스승이 좌수서(左手書)로 재기할 수 있도록 10년 가까이 병수발 들며 옆에서 보필했다.

동정(東庭) 박세림, 검여(劍如) 유희강 그리고 남전(南田) 원중식으로 이어지는 인천은 대한민국 서단의 큰 봉우리다.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이 구체화 되고 있다. 시립미술관 내에 서예관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이번 주말에 송현동 형님네 다락방을 뒤져 봐야겠다. 선친께서 걸어 놓았던 서예 표구가 혹시 검여나 남전의 작품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굿모닝인천 편집장